1994년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인정하는 신해양법이 발효되었다. 일본은 1996년 5월 우리 땅 독도를 기점으로 200해리 EEZ를 선포하고 독도와 울릉도 중간선을 양국의 경계로 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EEZ 선포 뒤 1년 2개월을 숙고한 다음에야 울릉도를 기점으로 EEZ를 선포했다. 그 결과 ‘독도는 일본 영토, 울릉도까지만 한국 영토’라는 등식이 성립된 셈이 되어버렸다. 우리 정부는 독도가 무인도라 EEZ기점이 될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10년 뒤 울릉도 기점을 취소했다.
우리가 외화난으로 인해 IMF의 그늘에서 허덕이던 1997년, 일본은 한·일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독도 근해에서 일본 어선의 고기잡이가 시작될 판이었다. 정부는 허겁지겁 협상에 임해 1998년 1월 신(新) 한·일 어업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우리의 영해이던 독도 근해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 관리하는 수역이 돼 버렸다. 우리 정부는 한·일 공동 관리수역이 영해와는 무관한 중간수역일 뿐이라고 한다.
국가 간 외교관계는 냉철해야 한다. 타국에 대한 배려는 자국에 대한 배신으로 되돌아온다. EEZ기점을 울릉도로 설정했다는 자체가 일본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우리 영토 서쪽 끝이 독도가 아닌 울릉도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 근해가 한·일 공동 관리수역화 됐다는 것도 일본 어부를 배려했다기보다 우리의 영해 주권을 일정부분 일본에게 양도했다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에서는 ‘독도가 진정 한국 땅이었다면 위의 두 사례에서와 같이 일방적인 양보를 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양보가 국제사회에 일본의 독도 침탈 명분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은 지난 11월 제주도 면적의 1.3배에 이르는 이어도 일대를 우리나라와 협의 없이 중국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켰다.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 태평양 공군이 설정하여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물론 KADIZ에는 독도 상공이 포함돼 있지만,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 주변상공과 이어도 상공은 제외돼 있다. 현재 마라도 주변상공은 일본, 이어도 상공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된 상태다. 1980~1990년대 우리 정부가 수차례 마라도 상공에 대해 일본과 KADIZ 확대 협상을 벌였지만 일본이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적불명 항공기의 영공 침범을 감시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구역으로 국제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방공식별구역은 자국의 영공을 방위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현재의 KADIZ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마라도 인근의 상공은 계속 일 공군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어도 상공의 비상상황에도 대처할 수 없다. 이들 상공에 대한 방치는 우리의 공역(空域)에 대한 포기나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바이든 미국 부통령을 만나 KADIZ 확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바이든 부통령은 한국의 노력을 평가만 할 뿐 계속 협의한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곧바로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소집해 이어도와 마라도 등이 포함된 새 방공식별구역을 확정했다. 독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과거의 외교적 양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은 듯, 우리의 영공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도전적 의지를 보여준 획기적 사건이다.
바이든 부통령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재균형 정책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말로 동북아에서의 일본 해상군사력 강화를 지지했다. 그리고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betting)하는 건 좋은 베팅이 아니라는 말도 남겼다. 그렇다고 독도침탈과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편향적 자세를 취할 순 없지 않은가.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영공수호를 위한 결단과 외교정책에 베팅한다. 왜냐하면 일방적 양보가 아닌 균형적인 외교조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