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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 우리들의 방주

                            우리들의 방주                           /정원숙
 

 

수 세기 전에 불던 바람이
오늘도 보는 건 사시의 물고기가
인간의 눈동자를 훔칠 수도 있다는 것, 수 세기 전에 흐르던 강물이
오늘도 흐르는 건 인간의 배설물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 기형을 낳고
기형을 기르고 있다는 것

긴 잠에 들기 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저질러온 불순한 기도를
낱낱이 적어 비둘기 발목에 묶어
우주 어딘가로 날려 보내는 것.
어느 날 비둘기 편에 날아든 편지에
지구는 이제 인간이 살 수 없는 천형지라는 사실이 적혀 있어

(중략)

누가 누구를 거느릴 수도,
누가 누구에게 명령할 수도,
불복종할 수도 없으므로 방주 밖은
침묵의 눈비가 천일 째 내리므로
우리들의 방주는 소금처럼 안전하지.
어쩌다 우릴 닮은 물상들이 방주의 문을 두드리면 살기 위해서든 죽기 위해서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존재가 되라고 말해주지

수세기 전에 있던 방주 한 척 우리들이 만든 티끌보다 가벼운 방주 한 척

가르랑가르랑 오늘도 떠 있는 건
지금도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가 흙이
아니라 물이라는 증거. 너희가
손에 쥔 많은 것들이
그 물이 일으키는 물거품에
다름이 아니란 반증

                                     -2013년 유심 11월호
 


 

존재의 불안감에 떨수록 방주를 꿈꾼다. 시대가 불안해도 방주를 꿈꿀 수밖에 없다. 방주를 꿈꾼다는 것은 그래도 멸하지 않으려는 강철 같은 의지를 가졌다는 것, 방주를 띄우는 부력은 그러나 티끌보다 더 가벼운 것에서 오는 것. 그러한 부력을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이 가벼워져야 하는 것. 깃털처럼 공기 하나만 품어야 하는 것, 정원숙 시인은 참신한 시각으로 좋은 시를 꾸준히 써 오는 시인이다. 방주란 공존의 장이라 아울러 함께 공존의 방주를 위해 가장 가벼운 존재가 되자고 말한다. 함께 살아가자고 따뜻하게 권한다. 우리가 공존하기 위해 가벼워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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