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파울 첼란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시절은 흩어져 여자의 등에 반짝인다고
시선을 거둔다
운명이란 최종의 것
정선 강가에 밤이 오면
밤하늘에 뜨는 별
나에게 당신은 그러하다
성탄절의 새벽길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기찻길 옆 제재소에서는
낮은 촉수의 등이 켜지고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내고 있다
선명한 모든 것들을 배반하며
산기슭으로 흐르는 눈발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또 언제나 부질없다
가끔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을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밥을 남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다
2013년 시와 표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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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인](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1401/368152_93276_811.jpg)
사랑은 사람의 눈을 밝게 한다. 예민하게 한다. 그러므로 미세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때 묻지 않는 감각으로 상대편을 바라본다. 느낀다. 아울러 사랑을 하는 사람의 호흡, 기침, 웃음소리, 말소리마저 벼락처럼 느낀다. 정선을 떠난다는 것은 사랑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 된다. 사라지는 것 부질없는 것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러나 밥을 먹는 다는 행위는 일상을 유지해 간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조금씩 밥을 남긴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떠날 없다는 숙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선을 떠나도 결국 떠날 수 없는 정선처럼 떠나도 떠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므로 사랑 때문에 그리움이 적설처럼 쌓이는 밤에 짐승처럼 우는 겨울밤이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