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산
기억된다는 것
열 손가락 동시에 폈다 오므리는 것
우연히 살아나는 미세한 진동 같은 것
충만으로 달려가는 귀향 같은 것
마음 둘둘 에워싸는 철부지 풍경 같은 것
책의 행간에 누워 있는 오래된 애인처럼
꽃무늬 몸빼 바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한 눈길처럼
내 안의 깊은 숲속
종일 햇빛 쪽으로 따라 도는
기억된다는 것
안녕, 누군가 손끝 살짝 건드려 준다면
화르르 삭은 뼈로 깨어나는 눈먼 기다림 같은 것
-- 이미산 시집 『아홉시뉴스가 있는 풍경』/한국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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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숙시인](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1401/370146_94363_584.jpg)
미모사는 손끝만 닿아도 잎을 황급히 오므리는 성질을 가졌다. 풍선처럼 차 오른 달뜬 감정, 애인의 손끝만 닿아도 살 떨리는 오르가즘. 격해지는 감정을 삭이며 은근히 움켜쥐는 주먹. 어떤 이유에선지 항상 벗어나지 못하는 긴장 상태. 아니 약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그 어떤 포즈도 미모사의 감정을 모르므로 단정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억된다는 것’이다. 열거한 모든 것은 유전적이든 상처의 재생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억의 작용들이다. 기억은 하나의 단서를 잡고 표면장력처럼 응집한다. 시인도 자신 안의 무의식을 깨워 미모사처럼 기억을 움켜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