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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배우가 25명의 인물 표현… 기발한 상상력 ‘감탄’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대사 없이 이야기 전달
넌버벌 마스크 연극
‘Go! 아비뇽 OFF’ 대상 수상
프랑스 아비뇽 축제 참가 예정

시골의 허름한 간이역 배경
유쾌한 마임극 …폭소 자아내
배우들 세밀한 연기 돋보여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무언의 애상…퍼포먼스로 표현


언어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확실히 말로 해주지 않는 것에는 답답함도 느낀다. 언어는 사고를 명료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말과 글은 생긴 이래로 소통의 중심을 차지했다.

넌버벌은 대사 없이 진행되는 연극이다. 말의 힘을 빌지 않고 극의 스토리를 전달하기 때문에 넌버벌 공연은 보고 나면 매번 감탄과 함께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지난 7일부터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는 창작집단 ‘거기가면’의 ‘반호프-시즌2’는 넌버벌 연극이다. 그러나 기존의 공연들과는 달리 ‘마스크’라는 오브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호프’는 지난해 열린 제10회 부산국제연극제 ‘Go! 아비뇽 OFF’ 경연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해외공연 가능성을 인정받고, 오는 7월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시즌 1과 같이 시즌 2의 배경 역시 허름한 역이다. 연극의 제목인 반호프(Bahnhof)는 ‘역’을 뜻하는 독일어다. 시즌 1은 낡은 간이역을 찾은 한 노인이 역의 역장으로 지냈던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였다면 시즌 2는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된 낡은 역과 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성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관객의 시선을 모으는 역할이지만, 커다란 코에 느끼한 눈매,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인상적인 마스크가 앞으로 등장할 다른 마스크들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며 무대로 시선을 모은다.

늙어보이는 역장의 등장으로 극의 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골의 작은 역은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그 곳에는 역장을 비롯해 매표를 담당하는 직원과 청소부 할머니, 그리고 역장의 친구인 생쥐 등이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역 직원들 간의 소소하고 장난스런 다툼,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남자의 안절부절, 산책길에 역에 들른 노인들의 의외의 춤사위까지,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역에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이어지고 있다.

갑작스럽게 객석 뒷편에서 두 사내가 나타나면서 이 평화로운 역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요란스럽게 줄자를 들이대는 두 남자는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얼굴(마스크)이지만, 곧이어 나타나는 깐깐해 보이는 여성이 서류를 펼쳐보이면서 역의 운명을 짐작케 한다.

아직 이들이 다녀간 것을 모르는 역장과 직원들의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 쓸쓸해지고, 곧 깐깐한 여성이 역장을 찾아오면서 역의 식구들 역시 역의 운명을 직감하게 된다.

극의 전반부는 유쾌한 마임극이 주를 이루며 순간순간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또 대사를 대신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손동작과 발동작 등 세밀한 연기가 돋보인다.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25개의 마스크들이 쉴새없이 교차되며 무대에 나타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단 3명의 배우가 25명의 인물을 소화하고 있음이 놀라울 뿐 아니라, 여성 캐릭터의 등장에도 불구, 마지막 무대인사에 남자배우 3명이 모습을 드러 낼 때면 고개를 갸욱하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역장이 역 부지가 개발될 것을 알게 된 후인 극 후반부는 간결하고 잔잔하게 마지막 씬을 위해 달려간다. 말 소리가 없는 연극이 표현하는 소리없이 사라지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 조용했던 역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소리들에 둘러쌓여 종말을 맞는 모습은 주술적으로도 보이는 배우들의 신비스런 퍼포먼스로 표현된다.
 

 

 


기존의 넌버벌 공연이 음악과 퍼포먼스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다면 이번 공연 ‘반호프’는 마스크라는 오브제를 사용하면서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일부 대체하는 한편, 캐릭터의 인상을 강조해 인물간의 갈등과 그 속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공연에 등장하는 25개의 마스크는 1년의 제작기간을 거쳤다. 이 25개의 마스크를 단 3명의 배우가 의상과 함께 바꿔가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무대 위에서 표현해 내는 모습은 여전히 신통할 따름이다.

들리는 것 없이 들리는 것처럼, 표정의 변화 없이도 풍부하게, 소리없이 유쾌하고 또 잔잔하게 감동적인 연극 ‘반호프-시즌2’는 오는 13일까지 공연된다.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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