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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 이슬비 이용법

                                                                                                      /강형철

 

남대문 시장 쌓여진 택배 물건 사이
일회용 면도기로 영감님 면도를 하네
비누도 없이 이슬비 맞으며

 

잇몸 쪽에 힘을 주며
얼굴에 길을 만드네
오토바이 백미러가 환해지도록

 

리어카의 물건들
비 젖어 기다리네
영감님 꽃미남 될 때까지
 
가로수는 누가 볼까 팔을 벌리고
사람들은 우산 쓰고 찰박찰박 걸어가는데
불탄 남대문 오랜만에 크게 웃고

                                            -- 시집 <환생>(2013, 실천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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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호 시인
우산도 없이 이슬비를 맞는 인생은 처량해 보입니다. 밤새 잡풀처럼 자란 턱수염은 어느새 거친 주름살을 비집고 희끗거립니다. 사금파리 같은, 오토바이 백미러에 비친 얼굴은 보지 않아도 조각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얼굴에 길을’ 만들었다는 구절에서 잠시 숙연합니다. 면도를 한다 해서 영감님 얼굴이 꽃미남이 될 리도 만무한데 더더욱 불탄 남대문이 웃을 리도 없는데 ‘젖는다’는 말 앞에 영감님의 지나온 길이 꾸불꾸불 눈에 선합니다. 신동엽의 시 ‘종로5가’에 등장하는 그 소년의 삶이 남대문 시장 지게꾼 영감님의 얼굴에서 다시 살아오는 것 같아 비애에 젖습니다. “이슬비 오는 날,/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밤 열한 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없이/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그래도 이 아침에 어서 일어나 말끔히 면도하고 거울에 비치는 길로 다시 걸어 가야합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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