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방법
/고영
동네 헌책방에서 시집 한 권을 얻어왔다
이 時代의 사랑
그 옛날
내 책꽂이 속으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주제넘던 문청의 애간장을 몇 말쯤
졸이게 했던 그 도도하고 고혹적인
한 여성시인이
졸지에 버림을 받은 이 時代의 사랑
혹은 이 時代의 당혹 앞에서 나는
폐허를 건너가는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이 時代의 사랑이 청파동을 떠돌 무렵
이 時代의 사랑이
時代의 상실로 읽혀질 무렵
책갈피 사이에서 무언가 작고 얇은
종이가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소쩍새 한 마리가 그려진
사용하지 않은 구십 원짜리 보통우표였다
이 時代의 상실을
소쩍새의 밝은 눈으로 누군가에게 전하라는 앞선 이의 뜻이었으리라
그래, 헌책을 읽는 후대의 누군가를 위해
위안거리가 될 만한
밑줄 하나라도 남기는 일이
시 한 편 쓰는 것보다 중요한 일임을,
이 時代의 사랑을 읽는 내내
어디선가 소쩍새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인세계 2013년 가을호
나도 이 시대의 사랑법이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시가 한성대역 도어스크린에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이 시대의 사랑법이란 것은 관심, 배려, 사랑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고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편의 정체성 인정과 아울러 존재에 대한 존경에서 출발한다. 그 방법인 관심, 배려, 사랑이라는 삼위일체를 이룰 때가 이 시대의 사랑법인 것이다. 이 시대의 비극은 그러한 사랑법 없이 사랑하기에 일어난다. 이러한 사랑법이 일방적일 때거나 이러한 사랑법이 소외 받을 때 일어난다. 사실 사랑법이 따로 있겠는가. 사랑은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법이고 절대가치인데 하여튼 좋은 시로 늘 우리를 감동에 빠뜨리며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고 말하는 고영시인이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는 모습이 따뜻하게 떠오른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