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이병률
행색이 초라한 어르신
게다가 큰 짐까지 든 그 곁을 따라 걷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식사는 하셨느냐고 물어요
한 끼만 묵어도 되는데
오늘은 두 끼나 묵었으예
날은 추워
마음은 미칠 것 같아
담배나 몇 갑 사드릴까 하고
담배는 피우시냐고 물어요
오늘은 두 끼나 묵어서
안 태워도 되야예
이제부터 낮달과 제비꽃이 배고파 보여도
하나도 그 까닭을 모를라구요
-이병률 시집 ‘눈사람 여관’ / 문학과 지성사
서로가 서로를 보는 순간 사라지는 날이 많다. 서로가 껴안지 않으면 사라지는 겨울, “함박눈”처럼 모두는 “각자”이며, “개인”이다. 눈은 내리고 날은 추운데 “짐”을 들고 가는 초라한 노인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이 껴안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세한이다. “까닭” 모를 아픔들이 줄었으면 좋겠다. 세 끼도 모자라 배가 터져라 먹어대는 음식점의 불빛은 꺼질 줄 모른다. “비대함”은 보편적이 되었다. 보편을 뛰어넘지 못하는 가난한 것들을 우리는 “세상의 나머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권오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