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다림
/고우란
팔순 난 할머니는 콩새의 눈알 같이
작은 콩꽃씨를 텃밭에다 심으시고
헤살헤살 웃으셨다 선한 바람 잘 들라고
잡초를 뽑아 놓고 헤살헤살 웃으셨다
이빨 빠진 구멍으로 헤살헤살 웃으셨다
텃밭에 처박혀 있던 땅꼬마 콩꽃씨께서
실눈 뜨고 일어나 두리번거리다
세 달 박이 어린 젖니를 내밀어
연두 꽃대를 세워 놓고
신비한 주문을 외워 콩새 한 마리
카수 시켰다 가는 귀 먹은 할머니 귀에
--계간 리토피아 2013년 겨울호에서
시인의 상상력이란 게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하면 조금은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시적 상상력이란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 시를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인생을 다 살아버린 팔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꼭 콩꽃씨 하나 텃밭에 심는 일은 아닐 것이다. 자연에 대한 친화가 왜 노년기에 와서 더 심각해지는지도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생명에 대한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콩꽃씨 싹이 터 꽃대를 세우더니 가는 귀 먹은 할머니를 위해 콩새 한 마리 불러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콩꽃과 콩새와 할머니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면서 슬그머니 웃게 한다. 이렇게 해서 생명은 생명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탄생과 소멸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장종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