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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에 취하다

고은 시인·재즈보컬 나윤선 ‘환상의 앙상블’

 

고은 시인 직접 詩낭독
시어에 담고 싶었던 감성
깊이있는 목소리로 전해
강렬한 에너지로 좌중압도
나윤선, 고은 詩 노래로 표현
무대와 객석 하나로 만들어

수원SK아트리움 ‘고은시인의밤 with 나윤선’


지난 7일을 시작으로 다음달 6일까지 열리는 수원SK아트리움 개관기념페스티벌은 수원시를 대표하는 공연장이 될 수원SK아트리움이 첫 걸음을 떼는 시간이다.

이 기간동안 수원SK아트리움에는 20편의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다양한 장르에서 관심을 끄는 공연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유독 시선을 잡은 것은 지난 14일 열린 ‘고은, 시인의 밤 with 나윤선’이었다.

지난해 수원시에 위치한 광교산 자락에 새 둥지를 마련한 고은 시인의 시를 그의 육성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재즈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출연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마른 체구, 그러나 꼿꼿하게 선 허리와 여유가 느껴지면서도 가벼워보이지 않는 평온한 미소. 평소 고은 시인에게 갖고 있던 이미지다.

무대 위에 오른 그의 손에는 그의 시가 빽빽히 새겨져 있을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그가 삶 속에서 마주한 순간순간의 감성들이 언어로 정돈돼 있을 시. 시를 써내려가는 순간순간의 감성에 따라 선택됐을 시인의 언어가 거기 있을 터였다.

시는 이미지와 감성을 언어로 담아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문자지만 적어도 그것이 시어로 사용될 때, 그것은 온전히 시인의 것이다. 하지만, 그 시어가 공감을 끌어낼 때 시는 창조자인 시인을 벗어나 감성을 나눈 모두의 것이 된다.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자리는 각별하다. 시어에 담고 싶었던 시인의 감성을 최대한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고은 시인은 시 한편한편을 낭송 할때마다 목소리에 강한 힘을 실었다. 차오른 감성에 무릎을 연신 구부렸다 펴는 모습은 입이 아닌 몸 깊은 곳에서 언어를 끄집어 내려는 듯 보였다. 올해 81세가 된 시인에게서 여전히 강렬한 에너지를 느낀 것은 이 때문이다.

마르는 입술을 침으로 적셔가며 쏟아내는, 일면 탁하면서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음성이 시어 하나하나에 생명을 부여했다.

그가 전하는 언어와 음성의 무게는 관객의 몸을 좌석 깊숙히 밀어넣으며 장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2부 순서, 미 발표작 ‘초혼’이 낭송될 때야 말로 시인의 감성이 극도로 차오른 때로 생각된다. 두루마기와 두건을 쓰고 나온 시인이 대북의 울림과 어우러져 장엄하면서도 엄숙한 감각 속에서 시를 읊어 내려가며 “오소서”를 외칠때면 그가 담아내고 싶었던 선조들의 혼에 대한 추모와 그들의 정신에 대한 찬미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어진 나윤선의 무대는 공연을 보다 농밀하게 만들었다. 분명 그의 무대는 최고였다.

고은 시인의 시 ‘작은 배’와 ‘세노야’에 곡을 붙인 노래는 그의 신비스런 목소리로 표현되며 객석을 술렁이게 만들었고, 그가 ‘칼립소블루스’를 노래할 때 객석은 숨을 죽였다.

몽환적인 그의 목소리는 관객의 혼을 빨아들이는 듯 했다. 루프스테이션(loop station)을 사용해 그가 화음을 쌓아갈 때마다 풍성해지는 ‘칼립소블루스’무대는 관객에게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관객이 머뭇거림 없이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은 지역 공연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무대와 객석이 ‘아리랑’을 함께 부른 공연의 마지막 순서에서도 관객은 함께 부르자는 나윤선의 권유에 곧 바로 응했다.

지역의 관객들이 무대와 호흡하는데 소극적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날은 온전히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 만큼 관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쉽게 공연장을 떠나지 못했다.

다만, 공연에 대한 만족감이 높은 만큼 공연장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공연에 대한 몰입이 커지며 온 신경이 귀에 집중될수록 공연장 내 영상장비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거슬렸던 게 사실. 공연에 대한 만족과 공연장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했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관객 맞이에 들어선 만큼 조금씩 미흡한 점이 드러나고 있는 듯 했다.

이번 개관기념페스티벌을 통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며, 많은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는 만큼, 빨리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연신 중얼거리게 됐다. 오늘 공연은 “오지 않았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라고.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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