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삶 속에서 떠나거나 남는 일은 끊임없는 순환을 거듭한다. 인간에게 있어 만남과 이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 사람은 하나의 “집”과도 같은 존재다. 누군가에게 깃들 수 있다는 일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지는 존재. 어느 순간 “집”에 홀로 남겨졌을 때 엄습해 오는 상실감은 “공포”로 남기도 한다. 사람과 “사랑”을 잃었을 때, “더듬거리”며 찾는 “밤”과 “눈물”과 “촛불”은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의 의미로 남고 있는 것일까?/권오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