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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서시(序詩)

 

서시(序詩)

                                /박형준

학생 식당 창가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손대지 않은 광채가

남아 있습니다

꽃 속에 부리를 파묻고 있는 새처럼

눈을 감고

아직 이 세상에 오지 않은

말 속에 손을 집어넣어봅니다

사물은 어느새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어머니

나를 감싸고 있는 애인

오래 신어 윤기 나는 신발

느지막이 혼자서 먹는

밥상이 됩니다

죽은 자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도

만나는 시간

이마에 언어의 꽃가루가 묻은 채

나무 꼭대기 저편으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 지성사 2011. 7.



 

햇살이 잠시 시인을 기다린 것인지, 학생들 맑은 목소리가 곁에 머물렀던 것인지 한 순간, 아직 이 세상에 오지 않은 말이 시가 됩니다. 빛의 광채가 닿은 사물은 어머니의 이미지가 되기도 하고, 애인이거나, 오래 신어 윤기 나는 낡은 신발이 되기도 하고 혼자서 먹는 밥상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 속, 일상의 찰나, 길지 않은 시간, 한 끼 식사를 하는 시간이 시인의 서시(序詩)가 됩니다. 한 순간이 죽은 것과 미처 태어나지도 않은 것과의 만남의 시간이 됩니다. 늦은 점심, 빛나는 광채가 어머니, 애인, 윤기 나는 신발에 닿는 언어의 꽃가루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모든 죽은 것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들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공존의 시간이 시가 되고 언어가 되고 존재가 됩니다. /이명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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