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슬픔의 숲
/안차애
아파트도 한 자리에 오래 자리잡다 보니
나무가 되어가나 보다
오래도록 바람에 가슴 뜯기며 살다 보니
뿌리가 생겼나 보다
요즘 들어 부쩍 창만 열면 새소리가 바쁘다
새들이 드디어 아파트에 나무처럼 깃들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앞 베란다 창에서
오후 설거지 무렵이면 부엌 창 쪽에서
낮고 높은, 강하고 여린 주파수를 보내온다
그러고보니
네가 오랜 여행을 떠나고 혼자 남겨진 뒤부터다
오래 남겨진 아파트
오래 남겨진 공터 오래 남겨진 가슴 한편
새들은
꼼짝없이 한 자리에 서서
슬픔의 뿌리만 내리는 것들에 제 둥지를 얹는다
지상엔 환한 슬픔의 숲이 하나 더 느는 것이다
-출처- 치명적 그늘 /문학세계사 2013년
아이들은 이제 기숙사로 자취방으로 떠나고 식탁은 반쯤 비어갈 것이다. 어디 아이들뿐이겠는가? 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구성원도 있을 것이다. 참 이상도 하지? 잘 보이지 않았던 공터, 잘 들리지 않았던 새소리 같은 것들이 여태 보이지 않다가 누군가의 부재 이후 보이고 들린다. 그것들은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으나 마음은 그것을 알지 못하다가 문득 크게 다가온다. 텅 비어서 숲속의 빈터처럼 빛이 들어오고 슬픔이 뿌리내리고 있는 꽉 찬 풍경의 시간이다. /박홍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