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그늘
/윤승천
열 네 살쯤에
척박한 뒤뜰에 살 수 있을까 하며
심어놓은 나무가
내가 저를 잊은 지도 수 십 년이* 되었는데도
그 때 그 자리에서
뒤틀리고 옹이 투성인 채로
모두 떠난 빈 집에
등 굽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윤승천 시집 한어동에서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꺾꽂이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온 날 우리 집 담 아래에다 셀 수 없이 많은 사철나무 꺾꽂이를 했다. 그것이 조금씩 자라는 줄 알았는데 대학교를 외지에서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철나무는 내 키를 넘고 무성해져 더군다나 사철나무 속에다가 박새는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기도 했다. 사철나무는 꺾꽂이해 준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두런거리는 내 목소리에 사철나무는 마음 설레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자주 둘러보고 그늘 아래 서 보고 애정을 쏟던 사철나무는 그 때 나의 반려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등 굽은 그늘이 등 굽은 그리움, 등 굽은 기다림으로 읽혀지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멋진 시를 윤승천 시인이 보여주었기에 가능하다. 시는 이처럼 공감대를 형성해 감동 깊은 세계로 우리를 끝없이 이끌어가기도 한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