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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수유리 2

수유리 2

                                                       /유희주

잠자리에 들면

귀가 베개에 닫힐까봐

모로 누운 채로 두 손을

볼 밑으로 넣는다



고요함도 얼어버린 겨울

나무에서 얼음조각이 떨어진다

산산이 부서진 고요의 조각들 사이로

살아남은 소리들의 기척을

잠자리에 누워 듣는다



먼 이국의 땅에서

모로 누워

귀를 바닥에 대면

바다 건너에 사는 친구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혹 내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고요 사이로 내 이름을

누가 불러줄지도 모른다



어제도 전화번호

하나가 연결되지 않았다

수첩에는 겨우

몇몇의 친구 이름이 남아 있고

미국 사람 몇몇을 새로 적어 넣었다



책장을 넘겨야 하는데

반쯤 넘어간 책장에

수유리의 어느 골목길이

구불구불 살아 있고

아직도

나는 거기 서 있다

-유희주 시집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문학사상 2012>

 



 

행간마다에 떨어져 내린 얼음조각이 녹아 흥건하다. 산산이 부서진 소리는 이국땅에 부서지는 얼음조각임과 더불어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속을 흘러내리는 살아남은 소리들의 기척을 듣기 위해 시인은 모로 누운 채 두 손으로 귀를 받치고 있다. 어쩌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손을 넣어 받치다가 눈물이라는 단어를 애써 지우고서 울음을 행간으로 이동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수첩에는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 둘 지워져가고 미국사람들의 이름이 들어서고 있다. 책장 한 장이 천근이다. 행간 사이에서 물소리 들린다. 물소리 따라가면 수유리 어느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꿈틀하며 살아온다. 거기 앳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서 있는 여인을 발견하면 고요히 그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한다. /조길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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