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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

                                                          /최승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 최승호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사, 1985)

 



 

말들이 넘쳐나고 있지요. 내 얘기만 합니다. 당신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할 말이 너무 많거든요. 그러다보니 당신과 나는 말의 거리만큼 멀어지고 있습니다. 나만 아프다고 나만 힘들다고 나만 괴롭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말을 늘어놓는 모두는 결국 나인 걸요. 공터는 아마 그런 역할을 하나 봅니다. 저 어렸을 적 공터도 그랬거든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고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을 멈추고 눈을 감고 공터의 중간 어디쯤에서 귀를 열어보고 싶네요. 무심하게 말이지요. 오늘 하루 무심한 듯 말을 아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유현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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