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읽는 법
/박지웅
나비는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나풀나풀 떨어지는 듯 떠오르는
아슬한 탈선의 필적
저 활자는 단 한 줄인데
나는 번번이 놓쳐버려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고
나비를 정독하다, 문득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나비는 아름다운 비문임을 깨닫는다
울퉁불퉁하게 때로는 결 없이
다듬다가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
나비를 천천히 펴서 읽고 접을 때
수줍게 돋는 푸른 동사들
나비는 꽃이 읽는 글씨
육필의 경치를 기웃거릴 때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
- 박지웅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 2012년 12월
나비는 꽃이 쓴 글씨라고 시인은 읽는다. 아니 쓴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시인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닦고 지우고 쓰고 또 삼키고 토해내기를 수도 없이 했을 것인지. 그렇게 뭉툭해지는 펜 끝을 바라보다 팔랑팔랑 피어나는 활자들이 꽃과 꽃이 주고받는 쪽지라니. 천생 시인은 시인이다. 봄볕 따뜻한 키 작은 뒷산을 걸을 때면 나비가 길을 앞서 따라나선다. 봄으로 길을 안내해 주기라도 하듯, 조붓한 산길을 소리도 없이 이쪽으로 팔랑, 저쪽으로 팔랑 거리다 호젓이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산책길이면 시 한 편 마음 가득하게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비를 놓쳐버린 시인은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으며 정독한다. 정독하는 그 사이가 산책하는 길과 다르지 않으리. 따뜻한 햇살 팔랑이며 사라져버린 나비를 좇아 잃어버린 길을 찾아가 본다. /이명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