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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 ‘숨은 일꾼’… 도내 구석구석 문화 싣고 달리다

경기도문화의전당 법인화 10주년
주역 10인 릴레이 인터뷰
황 병 태 전당버스 기사

 

2004년 법인화와 함께 입사
찾아가는 공연 25만4507㎞ 주행

진입로·주차공간도 없는
도내 오지 방문 대다수
매번 공연장 가까이 주차 진땀
단원 체력 위한 배려 노력

동생·자식 같은 200여명 단원들
가깝게 지내고 안전운행 신뢰 쌓아

“10년간 근무하며 긍지 갖게 돼

숨은 일꾼이 저 뿐이겠습니까”

지난달 법인 출범 10주년을 맞은 도문화의전당은 지난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의미있는 숫자들을 공개했다.

여러 숫자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것은 찾아가는 공연 사업인 ‘아츠 해비타트’로 만난 도민의 수 ‘114만7천493’명과 도문화의전당 버스(이하 전당버스)의 주행거리인 ‘25만4천507’㎞다.

두 숫자의 공통 분모가 되는 사람.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도문화의전당의 숨은 일꾼으로 10년 째 전당버스를 책임지고 있는 황병태(65) 기사다.

지난달 26일, 도문화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생전 처음 접하는 인터뷰에 낯설고 어색한 기색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묵묵히 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 곳곳에 겸손함이 묻어났다.



▲ 10년의 시작, 그리고 기억

황병태 기사는 지난 2004년 6월 1일, 도문와의전당 법인화와 함께 입사했다.

자영업을 하던 그가 버스 운전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사건, IMF 외환위기로 인해서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결국 사업을 정리한 그는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취득해 둔 대형면허가 떠올랐다.

“가장으로서 벌이를 해야했으니까요. 다행히 미리 따둔 대형면허 덕에 곧 관광버스 기사일을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드라마 촬영을 위한 버스를 운행하기도 했어요. 배우, 스테프를 태우고 소품 등을 실어나르는 일은 지금의 일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입사와 함께 그는 도문화의전당의 찾아가는 공연 사업(현 아츠 해비타트)으로 도내 문화소외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매번 그가 찾아야 하는 곳은 오지, 혹은 그에 준하는 장소였다.

“처음 찾은 곳은 파주의 한 초등학교로 기억한다”는 그는 “이제는 내비게이션 없이도 도내 곳곳을 찾아갈 수 있을만큼 10년 동안 많은 곳을 찾다 보니 특별히 기억나는 장소라는 것을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며 한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대형버스로 오지를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땅한 진입로는 물론이고 주차공간이 마련되지 않는 곳도 많았다.

그래도 그는 가능한 공연장 가까이에서 단원들이 내릴 수 있도록 매번 진땀을 빼곤 한다. “큰 장비는 따로 차로 옮기지만, 개인 소품은 단원들이 직접 나르기 때문”이라며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이는 공연 전에 단원들이 체력을 안배할 수 있게 하는 그의 작은 배려다.

▲ 전당 버스

“처음 운행하기 시작했을 때 버스에 1만8천㎞ 정도가 기록돼 있었는데, 지난해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24~5만 정도였어요. 그리고 지금 버스가 3만5천㎞정도 탔으니까 참 많이도 다녔네요.”

전당 버스에 대한 애정에 대해 묻자 그가 대답했다.

버스기사란 때로 외로운 직업이다. 운행 중에는 운전에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누군와 편히 대화를 나눌 수도 없을 뿐더러 승객이 일정을 진행하는 동안은 홀로 버스를 지켜야 한다.

그 역시 25만여㎞를 운행하는 동안의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을 것이다.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은 곳도 많아요. 그럴 땐 단원들을 내려주고 마땅한 장소를 찾아 외부로 나와있어야 해요. 주로 책이나 신문을 보곤 하는데, 장거리 운전을 한 후에는 잠깐 눈을 붙이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때문에 공연을 위해 운행하는 버스지만 의외로 그가 공연 현장에 함께있는 일은 드물다.

그렇게 오래도록 둘만의 시간을 가져온 버스에 대해 그는 역시 장황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다만 “정이야 많이 들었죠”라고 말하며 높아진 목소리 톤에서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9년을 함께한 그의 첫 전당 버스는 지난해 신형으로 교체 됐다. 교체와 함께 전당버스에는 “저를 모르시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라는 톡톡튀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달 중, 이 문구는 “10년의 감동, 100년의 설레임”이라는 도문화의전당 10주년 슬로건으로 교체될 예정이다.

황병태 기사는 “지금 문구를 보면서 오래된 단원들과 ‘설마 아직도 모르겠냐’는 우스게를 주고 받곤 했다. 문구가 바뀌면 이제 그런 이야기는 없어지겠다”며 그는 잠시간 미소를 지었다.
 

 

 


▲ 오지에서 느끼는 정

주차장소가 마땅치 않을 땐 공연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공연장에 도착해서, 또 공연이 끝난후 단원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단원들과 도민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마주하며 매번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한다.

“공연의 성격상 그런 곳(오지)을 찾아가야 해요. 제가 문화·예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공연 후에 단원들과 도민들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문화 예술이란 것이 참 의미가 있는 것이구나 실감합니다. 오히려 매번 아쉬움이 남아서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옛 추억을 하나 떠올렸다.

“한번은 공연장소가 논 가운데 있어서 버스는 도저히 들어 갈 수 없었어요. 인근 주민분들께 부탁해 1톤 트럭을 빌려 단원들과 소품을 옮겼는데, 어린 단원들이 트럭 뒤에 올라타고 가면서 즐겁게 웃던 모습이 기억이 나네요.”

그에게 도립예술단원들은 때론 자식 같고 동생 같은 사람들이다.

200여명이 넘는 단원들 한명 한명,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가깝게 지내다 보니, 때로 두개 단체가 외부 공연을 가질 때는 서로 전당버스를 타기위해 작은 경쟁이 일기도 한다.

그는 “당연히 외부차량보다는 전당 버스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주변사람들은 그의 인성과 운행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에게 안전운행에 대해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10년을 운행하며 쌓은 주변의 신뢰가 대답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숨은 일꾼

그에게 그간의 운행 기록이 최근 전당이 뽑은 의미있는 숫자로 이야기 됐음을 전하자, 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나이로 올해 65세인 그는 오히려 정년을 넘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가 개인적인 특기가 운전이다보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전당을 빛냈다고 말하기 보다는 제가 10년동안 전당에 근무하면서 나름 도내 문화예술에 일조하고 있다는 긍지를 갖게 된 것이 더 크죠.”

‘숨은 일꾼’이라는 표현도 부담스럽다며 다신 한번 몸을 낮춘 그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마지막 말을 전했 왔다.

“이 곳에서 10년을 근무하면서 공연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숨은 일꾼이 저 뿐일까요.”/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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