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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소가죽 구두

소가죽 구두

                                                        /손순미

늙은 소의 발을 굽는다

늙은 아버지의 발을 굽는다

토막 난 아버지의 발을 잡고

아버지의 삶을 다듬기 시작한다

검은 육질에서 기름이 돌기 시작한다

탕약처럼 검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온

아버지 평생의 켤레,

아버지 고통의 부위가 누릿하게 익어간다

나는 아버지의 삶에 지나친 광택을 낸다

아버지 평생의 車, 아버지 구두가

모처럼 호사를 한다

반짝! 아버지의 영광은 짧았다

사람의 발을 한 짐승이, 짐승의 발을 한사람이

아버지를 짓밟았다

그렇게, 칠십 평생 찍어온 아버지의 낙관(落款)은 불발이었다

윤을 낸 구두를 선반 위에 올려둔다

평생 바닥이었던 아버지가

높은 곳에 올라가 계신다

한밤중

구두의 울음이 구성지게 들린다

아버지가 구두를 타러 오신 것일까

- 『현대시학』 2005/11월

 


 

가용가치가 가장 높은 것이 아버지다. 의자가 돼 달라면 의자가 되고, 한 그릇 우족 탕이 되어 달라면 우족 탕이 된다. 길이 돼 달라고 하면 굽은 등을 말없이 길로 내놓으신다. 아버지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킁킁 거리는 기침소리도, 우발적 고함도 허세인 것을 다 안다. 이 시에서는 아버지를 소와 소가죽으로 빗대어, 소가죽 구두로 빗대어 아버지를 절절이 나타내고 있다, 절절이 부르고 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왜 시가 좋은지 왜 시가 아름다운지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윤을 낸 구두를 선반 위에 올려둔다/ 평생 바닥이었던 아버지가/높은 곳에 올라가 계신다. / 한밤중/ 구두의 울음이 구성지게 들린다./ 아버지가 구두를 타러 오신 것일까’가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좋은 시를 다시 읽게 해준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김왕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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