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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들에게 정절은 곧 국법이었다

 

‘정절’의 키워드로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를 살핀 책.

‘정절’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비슷하다. 소복을 입은 채 언제든 가슴에 찬 은장도를 꺼내들 준비가 된 여인.

이 여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겼을 말이 있다.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겨야 하며, 일생 동안 아버지, 남편, 아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임을 뜻하는 ‘일부종사’와 ‘삼종지도’.

그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잔혹한 역사를 탄생시킨 내밀한 국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저자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은 정절이 조선시대 역사의 내밀한 원리를 읽어내기에 유용한 개념임에 착안, 남녀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호 관계성의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됐다고 말한다.

또 순결과 신의로써 몸과 마음을 통괄하는 이 정절 개념은 유교이념의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사실상의 일등공신이었고,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고 설명한다.

정절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忠)과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효(孝)와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하위자(下位者)의 의무였으며, 부부의 사적 관계를 반영한 도덕 개념이지만 삼강(三綱)의 질서로 편입되면서 사회 및 국가의 이념과 결부된 공공의 것이 됐다는 것이다.

정절을 지킨 아내를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정절을 해친’ 아내에 대해 국가가 분노하고 응징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정절은 곧 국법이었다. 이 책은 정절에 내포된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와 그 숨겨진 비밀을 밝힘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또 다른 진실을 담아냈다.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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