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서점
/최범영
외로 꼬인 삶을 데리고 가끔 그곳에 들러
처음 보는 책 가까이 그 녀석을 앉히고
잔술 한잔과 뜨끈한 국물을 시키지
빨리 다가가 너무 들이대면 수줍음 놀랄까봐
눈웃음만 짓고 있지
몇 쪽의 말이 펼쳐져 나와 살맛나게 해줄까
웃을 준비부터 하지
읽을 구절이 바빠서 내일이나 온다 해도 좋아
늘 홀로서도 즐거워 춤추며 사는
저 미루나무
책 열 권 읽은 턱이니
-최범영 시집 <고봉밥 어머니/다시올>
미루나무를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선 공중으로 시원하게 뻗은 큰 키가 먼 곳까지 볼 수 있을 것 같다. 초록의 무수한 잎사귀는 바람 없이도 반짝거린다. 보고 있으면 어린 날의 순수로 돌아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꼬이고 힘든 삶을 미루나무에게로 데려가는 상상이 재미있다. 의젓한 미루나무는 지친 삶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을 들려주는 한 권의 책과 같다. 언제나 홀로 서서 언제나 즐겁게 맞이하는 미루나무 서점! 그곳에 가기만 해도 책 열 권 쯤 읽어낸 풍성함을 얻을 것이니.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