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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황홀한 그늘

황홀한 그늘

/조은길

벽돌을 짊어지고 여름을 건너던 사내들이 물기도 채

가시지 않은 시커먼 콘크리트 바닥에서 낮잠을 자고 있

다 그들이 빨아먹다 밀쳐 둔 갈치찌개 냄비에 쉬파리들

이 새까맣게 대가리를 처박고 있다 갈치 비린내를 따라

온 도둑고양이 한 마리 검은 꼬리를 치켜들고 불덩이 같

은 담을 뛰어내리는 순간 마침내 범람한 태양 팬 위의

비곗덩어리처럼 지글지글 무너져 내리는 아스팔트 놀란

매미들 일제히 비상 사이렌을 울리고 여자들 벗긴 과일

처럼 허벅지를 까고 머리카락을 치켜 올리고 수박 화채

오이냉국을 타고 약 백숙을 달여 몰약처럼 황홀한 그늘

벽을 쌓는다 그 벽에 부딪쳐 코가 납작해진 태양 악동처럼

퉤퉤 소나기를 뱉으며 줄행랑을 친다

-시집 ‘노을이 흐르는 강’ (서정시학, 2007)에서



 

 

 

‘황홀’은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어두운 그늘을 황홀과 어울려 놓았습니다. 사뭇 반어적입니다. 누군가 그늘에 싸여 있다고 말하면 그는 무언가에 몹시 시달리고 억눌려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그 부정적 대상에 대해 더없는 긍정의 말을 가져다 놓았군요. 그것도 못해 ‘몰약’같다고 했습니다. 몰약은 유향과 함께 성경에 나오는 아주 귀한 향료가 아닙니까.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가 예물로 바쳤다고도 하고 예수의 죽음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시는 유쾌하고 장난스럽습니다. 한낮 무더위를 식히는 풍경을 순간 잡아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주었습니다. 이 쾌락 속에서 문득 숭고한 뜻을 보게 됩니다. 그늘은 먹다 남은 갈치찌개 냄비처럼 비루함으로 낭자해보이지만 몰약처럼 상처 끝에 얻게 된 향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드리운 그늘을 두려워 말고 피하지도 말고 오늘의 고통을 넘어가는 안식으로 삼아보지 않겠습니까? /이민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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