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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

/박서영

공원 나무 의자에 앉은 할머니의 얼굴에

자줏빛 시반(屍班)이 그려져 있다

의자가 저울처럼 죽음으로 기울어질 때

유모차가 갸륵하게도 꽃을 업고 어디론가 간다

벌레 먹은 나뭇잎을 바삭바삭 밟아본다



얼룩이 너무 빨리 지워져

내가 지워야 할 색이 없다

-이 스펀지로 매질해도 되겠습니까?



점이 번지면 꽃의 형체가 완성될까

빛의 전령사들이 내려와 잎사귀를

사각사각 뜯어 먹고

꽃숭어리 맺힌 얼굴을 찰칵 찍어 간다

-시집 ‘좋은 구름’(실천문학사, 2014)에서



 

 

 

치자꽃 향기를 맡으면 여인의 화장내음이 납니다. 그래서 문득 잊혀진 사람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답니다. 할머니 얼굴에 그려진 얼룩이 치자의 자주빛처럼 여인의 향기를 잃지 않은 흔적은 아닐까 생각하니 죽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꼭 있을 것만 같습니다. 유모차에 실린 꽃처럼 할머니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습니다. 삶과 죽음의 자연스런 건너뜀을 시인은 ‘갸륵하다’고 합니다. 그 표현이 정말 갸륵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따뜻하고 순하게 할머니의 삶을 읽어냈나요. 다 스러진 나뭇잎을 밟으며 입가에 맺혔을 시인의 깨달음의 얼굴이 사뭇 그립습니다. 지난 세월은 단지 보기 싫은 얼룩만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싹싹 문대 지워야만 하는 흉만은 아닐 겁니다. 배경이 없는 아름다움은 별 볼 일 없어 보입니다. 우리들 삶의 얼룩은 아무래도 인생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향기 같습니다. /이민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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