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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갑골문자

갑골문자

/곽경효



바닷가 모래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북의 등껍질

몸의 이미지는 사라져 버리고

선명한 육각형의 무늬만 남아 있다

천천히 걸어온 삶의 흔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제 몸에 새긴 암호가 아닐는지

그동안

바다도 땅도 아닌 다른 세상을 꿈꾸느라

한 생이 저무는 줄 몰랐다

보이지 않는 글자를 해독하려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

지금 모래 위를 걷고 있는 나와

모래 속에 박혀 있던

거북의 시간을 생각한다

살아있음과 죽음이 함께 뒹굴고 있는

절대불멸의 이 아득한 공간을

몸이 삶의 일부분이라면

소멸은 또 얼마나 오랜 것인가

끝내 뼈 한 벌의 무게로 빛나고 있는,

- 《문학마당》 2007. 겨울호



 

 

 

소멸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으나 가장 슬픈 것이다. 지상에 남기는 마지막 두 글자가 소멸인 것이나 이름은 더 오래 남아 소멸의 말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절대불멸의 아득한 공간에서 떠도는 것은 소멸이란 과정을 통해 절대불멸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소멸이니 불멸이니 결국은 쳇바퀴를 돌리듯 돌면서 멸의 나라를 이루어간다. 멸이 있는 나라에는 생이란 아름다움이 있다. 멸이란 바탕위에 생이란 존재의 꽃이 핀다. 뼈에 새긴다는 것은 갑골문자로 남는다는 것은 한 벌의 뼈로 남는다는 것도 결국은 멸의 입구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다. 하나 멸하기 전까지 멸을 거부하는 것만큼 생의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다. 멸로 가면서 서로의 등을 다독여주는 동행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시에서 갑골문자와 지은이와 공존하는 시간이 서로 연대감을 이루는 전율의 시간인 것이다. 묵묵하나 늘 좋고 울림 큰 시를 내보이는 시인의 시에 끝없는 갈채를 보낸다.

/김왕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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