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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은행나무

은행나무

                                                 /박형권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주면 햄버거 한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한 잎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

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먹어라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창비, 2013)에서

 


 

곧 가을이 오겠지요. 그러면 거리거리 온통 은행나무 잎으로 노랗게 뒤덮이겠지요. 나뭇잎이 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세속적일까요. 하지만 세상은 가혹합니다. 돈이 없으면 굶기 일쑤고 나아가 돈 없이 밥 달라면 뺨을 맞을 겁니다. 세상이치가 그렇지요. 그런데 시인은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네요. 은행나무 잎을 주고 끼니를 때우고 은행나무 잎을 건네고 사랑을 이루었지 않느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시절이 있었나요? 아주 오래됐지만 함께 먹거리를 나누고 돈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보고 가족을 이루었던 때가 분명 있었지요. 그리고 느닷없이 뺨을 때리네요. 왜 돈 세상에 기웃대었냐고. 맞습니다. 돈에 돌아버린 세상에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길거리에 떨어진 은행나무 잎을 줍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폴 발레리처럼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되뇌며. /이민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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