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원
새잎 돋아날 때가 되도록 악착스레
들러붙어 있는 쭈글쭈글한 은행알 두 쪽
꼭 늙은 물건 같다
추레한 겨울의 아랫도리를
샅샅이 까발려 내려는 듯
치욕적인 입춘 날 햇빛이
힘없는 사타구니를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아니다,
저 물건 속에 꼬깃꼬깃 담보 되어 있는
가장 확실한 회춘의 방식을
잠깐 이해하지 못했던
노골적으로 꼴통인 내 머릿속에
한참 쪼여주고 싶은
방사선 같은 저 햇빛!
-이인원시집 〈궁금함의 정량/작가세계〉
쭈글쭈글한 은행알 두 쪽을 늙은이 거시기에 달린 물건으로 생각한 시인은 입춘의 햇살을 치욕으로까지 여긴다.
그러나 시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모든 다른 은행알들은 누군가 따서 식용으로 약용으로 가져가고 생식의 기회를 놓쳤음을 포착한다, 생식의 희망이 남은 건 오히려 쭈글쭈글한 은행알 두 쪽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입춘〉하고 한글로 써도 될 제목을 한자로 쓴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立春의 立은 설립이다. 선다는 뜻이다. 그것도 봄과 함께 꼿꼿이.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