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기
/박관서
그와 나는 두 가지만 이야기한다
붉은 등
푸른 등
벌써 삼십 년이 흘렀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와 나의 등허리를 밟고
바람도 지나갔다
푸른 등
붉은 등
미안하지만,
그와 나는 같은 꿈을 꾸는 것이다
-박관서 시집 『기차 아래 사랑법』(푸른사상, 2014)
시인은 철도원입니다. 그의 등을 밟고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시인에게 기차는 사랑이며 분노이며 미움이며 감동이며 행복이며 또한 불행일지도 모르겠네요. 붉은 등과 푸른 등 두 가지의 등만을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무수히 떠도는 말들이 공허하게 들리는 나날들이지요. 이렇게 기차 아래 철로에 등을 대고 사랑을 기다립니다. 삼십 년을 기차와 함께 지나온 시인은 여전히 두 가지 표식만을 가지고 꿈을 꿉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이 있다면 사랑이 있다면 두 가지 언어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에게 등을 기대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런 하루를 꿈꿔봅니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