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근
진지한 하루 살았느냐고
신호등의 빨간불이
나를 세워놓고 묻는다
하루를 살았다는 건
내 인생의 하루를
떠나보내는 일
얼마나 온 걸까
살아 온 날은 셈이 뚜렷한데
지워 나가야 할 날
단 하루도 장담 못하면서
회귀본능은
가로등 불빛처럼 찬란하다
아침이면 지워질
집으로 가는
또 다른 길
--김연근 시집 ‘소안도 달빛물고기’(열린출판사,2014)
한 해의 끄트머리쯤 오면 문득 달력은 삶의 신호등이 된다. 시인은 세상의 신호등을 보며 문득 우리의 삶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리고 묻는다. 인생의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그 하루를 떠나보낸 이별의 신호였음을, 살아야 할 날이 곧 지워야할 날인 것을 깨닫고 살고 있는지 묻고 있다. 우리는 잘 지워냄으로 잘 살아져 가는 것은 아닐까? 잘 멈춤으로 잘 사라져가는 것는 아닐까? 출근길 신호등에서 다시금 자신에게 자꾸 묻게 된다.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