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9 (토)

  • 흐림동두천 30.2℃
  • 구름많음강릉 28.3℃
  • 흐림서울 31.3℃
  • 대전 23.6℃
  • 대구 24.1℃
  • 울산 23.3℃
  • 광주 23.7℃
  • 부산 22.6℃
  • 흐림고창 23.6℃
  • 제주 28.2℃
  • 구름많음강화 29.3℃
  • 흐림보은 24.4℃
  • 흐림금산 22.8℃
  • 흐림강진군 24.0℃
  • 흐림경주시 24.2℃
  • 흐림거제 23.6℃
기상청 제공

[아침시 산책]길을길을 갔다

길을길을 갔다

/김근



여자가 살을 파내고 나를 심는다

나는 아무 저항 없이 여자의 살에 뿌리를 내린다

내 실뿌리들이 혈관을 타고 여자의 온몸으로 뻗어 나간다

여자를 빨아먹고 나는 살찐다

언젠가 여자는 마른 생선처럼 앙상해질 것이다



옛날에도 그랬다



나는 커다란 종기처럼 여자에게서 자랐다

나라는 고름 주머니를 달고 여자가 길을길을 갔다





-시집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문학과지성사, 2014)에서

 

‘옛날에도 그랬다’는 말이 귀에 솔깃합니다.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하듯 시인은 우리의 근원으로 더 거슬러 갈 것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여자에게서 잉태되고 태어나고 길러졌기에 종기처럼, 고름처럼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시인은 숙주인 여성의 몸에 기생하는 에일리언 같군요. 영화 장면처럼 기괴하고 흉측한 우리 삶의 초상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자기 생활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얼마나 많이 남의 삶을 무심코 혹은 일부러 침범하고 침탈하였나요. 여자가 이 오만하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을 왜 끌어안고 꼬이고 꼬인 길을 나서야만 했을까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여자가 아니라 ‘자연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성경에 나오는 이브보다 더 오래 거슬러 가면 ‘미트콘드리아 이브’와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전쟁을 멈추지 않는 인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가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 길 따르고 싶습니다. /이민호 시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