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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설한(雪寒)

 

설한(雪寒)

/최서림

살강에 쥐똥이 얼어붙었다

불씨가 사위어가는 작은 마을들

폭설에 눌려 집들이 나지막하다

지도에 점 하나 찍지 못하는 마을처럼 남겨진 노인들

마음의 곳간부터 텅, 텅, 비어 있다

텅 빈 쌀부대처럼 버석거리는 몸들,

까마귀같이 삼삼오오 경로당에 모여들어

점 십의 민화투를 치다 다툰다

카시미롱 이불 속에 언 발을 묻으며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을

목화의 꿈을 그리고 있다



목화를 따 먹으면 목화처럼 환하게 피어나던,

그림을 그리면 개도 고양이도 사람도 집도

목화솜같이 붕붕 떠다니던,

그림자도 없이 원근법도 없이



 

지금도 우리 부엌에 ‘살강’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쥐똥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겨울날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입니다. 마을이 고립되었듯이 인생도 비어 버린 것처럼 한 구석에 쓸쓸합니다. 오직 머리 쇤 노인들만이 모여 앉아 살을 에는 추위를 꿈처럼 맞고 있습니다. 여름 날 살강에 얹은 사발들은 뽀득뽀득 물기 가셔 빛이 났건만 겨울 눈 속 찬바람에 손바닥 쩍쩍 달라붙는 세월이 야속합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온 세상을 덮어 자못 따뜻하였는데, 그래서 미당 서정주가 눈 내리는 소리를 ‘쾐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네 번이나 속삭였는데, 눈은 모든 걸 지워버렸습니다. 눈 오는 다음 추위는 아무래도 세월의 마지막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장춘몽, 세월은 젊은 날 목화솜처럼 부풀어 올랐던 바람들을 지그시 눌러 놓고 가버릴 기세이니 우리 서둘러 환해지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민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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