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박소원
형은 평생 독선생을 자청한
할아버지 두툼한 손을 가졌다
고등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어서도
공책 몇 장씩 가족 이름만을 필사하던
장애 이급의 손을 가졌다
그는 가난한 친구에게 할아버지 몰래
슬쩍 공책 몇 권 집어주던
날랜 손을 가지고 있다
대나무밭을 들락거리며
담배를 일찍 배우던
니코틴 노랗게 밴 손가락을 가졌다
구름 그늘 몇 근 내려앉을 때까지
어린 내가 꺽꺽 울면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주던
골 붉은 손을 가지고 있다
-박소원 시집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 북인
‘손’은 형태적으로는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큰 손, 작은 손, 두툼한 손, 가느다란 손. 그러나 모습으로 손을 다 말할 수는 없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손’의 의미는 노력, 권력, 수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소통의 관계에서 손은 가장 먼저 접촉하는 신체 부위라 할 수 있다. 악수를 시작으로 위로와 격려의 단계로 발전하여 봉사, 기부로 이어지는 손의 쓰임새는 무한하다. 손버릇이 나쁘다거나 폭력을 가하는 부정적인 손도 있다. 손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손 주인의 몫이다. 말없이 누군가의 등을 토닥여주는 골 붉은 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