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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서문을 위하여

 

서문을 위하여

/문정영

제목은 갈잎으로 물든 저녁해로 해야겠다. 본문에는 만신창이 사랑이 부른 한 소절도 적어 넣고 싶다. 가장 억울한 한 줄은 감추고 감추었다가 첫눈 녹듯 들여 써야겠다. 한두 행은 여백으로 두어 못다 한 용서는 적지 말아야 겠다. 부끄럽다고 쓰는 순간 사라지는 행간은 없을까. 어느 책의 첫줄도 관용으로 시작된 것은 없다. 그래서 본문이 끝나고 나면 서문은 여력으로 써야 한다. 힘이 들어가는 순간 가장 빛나는 언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비문(秘文)처럼 모르는 이가 써준 머리말을 본 적 있는가. 모르는 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선물이어야 한다.

-시집 〈그만큼〉(시산맥사, 2014)에서



 

 

 

우리는 인생의 서문을 오래 전에 썼다고 봐야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울음 울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 시는 ‘서문을 위하여’라기보다는 ‘발문(跋文)을 위하여’가 적당해 보입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살아온 내력과 감상을 적어야 어울릴 듯합니다. 거기에 만신창이가 된 사랑 얘기를 넣는 것이고 용서와 부끄러움과 비밀스런 말들을 담는 게 마땅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후서를 쓰는 것이 시적이지 않고 서문을 쓰는 것이 시다운 것은 왜 일까요. 왜 시인이 ‘본문이 끝나고’ 나서야 서문을 쓰겠다고 했는지 헤아릴 것도 같습니다. 인생의 끝은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본문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굴곡진 삶의 역정은 서문을 향해 가는 도정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그 순간을 위해 누군가에게 다시금 선물이 되기 위해 서문 쓸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이민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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