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속의 검정
/이소연
모란 꽃송이; 그 어둑한 동굴로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빨강 속에서 느끼는 검정의 일렁임 소리가 들린다
지독하게 독한 검은 방의 모서리에서 나는 색의 층위를 발견한다
속엣 것들 환해지고 서늘해져 몸이 한결 가벼워질 때
당신은 짐작했겠지만,
내 아랫배에선 빨강 속의 검정; 핏덩이가 쏟아진다
드맑은 통증이 너무나 눈부셔서 모란꽃 여러 번 피었다 진다
나는 꽃에게 파 먹히기를 바라듯 새로운 정절이 찾아온다고 쓴다
모란 꽃잎들 오므렸던 입술을 활짝 벌려 흥건한 새벽
나는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내 불두덩을 씻은 적이 있다
그때 첫 경험의 감추고 싶은 신음 소리가 떠오른다
그건 빨강 속의 검정의 흐느낌이다 나는 잠시 조용해진다
《시와 경계》2014년 여름호
그 어둑한 동굴로 따라 들어가게 만드는 시다. 그 관능의 신선한 맛이 흐르는 동굴로 초대 받고 싶은 밤이다. 그 눈부신 통증 곁에서 여러 번 피었다 지고 싶다. 그 지독한 빨강 속의 검정을 마시고 싶다. 내 몸뚱아리 통째로 뜯어 먹히고 싶다. 그래서 새로운 절정이 찾아오는 감동의 새벽을 이슬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지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련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