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박덕규
코를 세게 고는 통에 잠을 설쳤잖아!
다리 꼬고 앉지 마, 허리 나빠져!
젓가락으로 반찬 들쓰시지 말라니까!
잔소리하던 아내가
오늘은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고개 한번 안 들고 밥을 먹고 있다
아침 신문에 난 배병우 씨 사진의
소나무 껍질 같다.
백련사 뒷숲에서
오래전 딱 한번 꽃 피워 본 뒤
해바라기
해바라기하느라 몸이 뒤틀려버린
동백나무 닮았다
창밖
구름 쪼아 먹는
오리주둥이 같다
이제는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다.
-박덕규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서정시학, 2014)
우리의 삶에는 익숙해서 놓치는 풍경이 있다. 남편의 풍경, 아내의 풍경, 가족의 풍경, 이웃의 풍경이 그러하다. 특히 아내의 잔소리 풍경은 늘 같은 맥락이라 무심히 지날 때가 많다, 어쩌면 아내는 정말 백련사 뒷숲에 딱 한번 꽃 피우려 해바라기 하느라 몸이 뒤틀려버린 동백나무는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이가 전하는 말(語)들 중에 감추어져 있는 참 말, 속마음을 자신도 꽃으로 피고자하는 몸부림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더러는 고개숙인 채 말을 잃어버린 그를 쳐다보게 한다. 아니 내가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시인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도 미쳐 놓쳐버리는 나약한 죄인임을 돌아보게 해준다.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