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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역사바로세우기 첫 발

지난달 매서웠던 대한(大寒) 한파를 두고 언론에서는 “국내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그 시기, 동토(凍土)의 땅 대한민국 한켠에서는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모 인터넷 언론의 주도로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라는 모금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시종 조용하게, 그러나 뜨겁게 진행됐던 이 인터넷혁명은 배반의 역사를 단숨에 날려버리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려는 국민적 염원의 발현이었다.
지난 연말 2004년 예산안을 심의했던 대한민국의 국회는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족사학계에서 오매불망 기대했던 ‘친일인명사전편찬비용’을 전액삭감해 국민적 공분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에 분개한 네티즌들이 하나둘씩 참여해 이룩해낸 인터넷혁명은 실로 대단했다. 모금운동은 애초 5억원 달성 목표일을 광복절인 8월 15일로 잡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목표액은 8·15은커녕 3·1절을 한달여나 남겨둔 시점인 지난달 말 불과 11일만에 달성되고 말았다.
대의정치의 전당인 대한민국 국회가 심의 끝에 ‘전액삭감’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5억원을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작은 혁명이 가져다 준 성과는 단지 사전 편찬이 가능해졌다는 현실적 성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바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에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본보는 수원출신이며 일제말 부민관사건의 주역이었던 독립운동가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만나,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의 취지와 네티즌 혁명을 통해 편찬비용 모금이 이루어진 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의미는?
= 친일파와 그 자손들에 대해 피해를 주거나 보복하려는 게 아닙니다. 더구나 감정적인 대응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아직도 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물론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시작한 일이구요.

- 개인적으로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 3·1절이다 광복절이다해서 때만 되면 독립운동가랍시고 이런저런 자리에 초대를 받곤 합니다. 그러나 전 그런 자리에 절대 안갑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피켓들고 시청앞에 나가 일인시위를 하는 게 낫지요. 아직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 안됐습니다. 지금도 친일파와 그 자손들이 호령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남북분단 상황이고요. 저는 늘 역사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승에 가더라도 순국선열들께 친일인명사전 만드는 일이라도 하고 왔다고 해야 덜 죄송할 것 같습니다.

- 이번에 인터넷을 통한 모금운동으로 사전 편찬 비용이 다 모였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 다 모인 건 아니고, 올해 쓸 비용만 모인 겁니다. 저는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 보다 이런 국민모금을 통해 사업이 진행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에 참여해 준 것을 보고 참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만 만들고 문을 닫는 게 아닙니다. 그 이후로 더 할일이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을 한다든지... 개인적으로는 현재 진행되는 모금운동이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저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낼모레 연구소에서 회의를 할 겁니다. 계속할 것인지, 한다면 어떤 목표와 계획을 가져야 할지...

-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요즘 방송 출연도 자주하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많이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딱히 젊은이로 국한할 것은 없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요. 역사앞에 정직해지자 입니다. 요즘 세대들은 역사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이번일을 통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게 증명되긴 했지만... 역사앞에 겸손하고 정직해야만 발전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바로 민족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그저 말로만 민족정지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부터가 역사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 그 말씀은 혹시 국회의원들에게 하는 것인지요.
= 국회의원들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그럴 가치가 있나요? 지금 국회의원 하는 분들 중에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몇분 있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 말이죠. 그분들이 그 사실을 숨기고 있어요. 이게 바로 현실입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숨기고 친일파의 자손들은 떵떵거리고 살고 있으니... 물론 몇몇 분들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김희선(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손녀), 이종걸(이회영 선생의 손자), 김원웅(김근수·전월선, 부모 모두 광복군 활동) 등이 그렇죠. 반면 같은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도 몇몇은 실망스럽기만 해요.

- 수원출신이신데, 고향에 대해?
= 화성 출신이지요. 근데 한 7~8년 전부터는 제가 수원출신이라는 게 부끄러워서 어디가서 고향 얘기를 안해요. 예전에는 수원(화성)에 대해 강의도 하고 다녔는데... 홍난파 때문에 그래요. 그가 친일활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습니까. 그런데 수원에선 그가 지역 출신 인물이라고 엄청 우러러 보려고 해요. 무슨 기념사업회다 기념음악회다 해서 난리 치는 모습 보면서 참 한심하다 싶더군요. 그래 지난번에 홍난파 학술세미나 한다기에 연구소 식구들이 나서서 시위도 하고 그랬지요. 그래도 소용없더라구요.

- 향후 계획은?
= 저는 이번에 사전 편찬비용 모금운동이 성공리에 진행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한때 외로웠지만 결국 옳은 일은 세상에서 빛을 보게된다는 평범한 진리도 새삼 깨닫게 되었구요. 그래서 전 친일인면사전 편찬에 대한 저의 의지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만약 내가 죽거든 친일인명사전을 내 관속에 함께 넣어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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