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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외형 안에 담겨진 풍성한 빛과 그림자 ‘놀라운 반전’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라 투레트 수도원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 기법 집대성

무색과 원색, 빛과 그림자 활용한 공간 구성

침묵의 긴장감과 터질듯한 충만감 느껴

카푸어 작품과 조합 최고 ‘기막힌 예술체험’

머무는 동안 건축가에 대한 관심 고조

지하의 납골당이자 기도처인 크렙타 방문

수도원 혈관에 피 제공하는 심장처럼 여겨져
 

 

 

 


라 투레트 수도원은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 그가 지은 롱샹 성당과 함께 전 세계의 건축가들과 애호가들이 순례하는 건축의 성지다.

형식, 동선, 빛과 그림자 등 그가 평생 관심을 가진 건축기법이 집대성된 건물이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1960년 롱샹 성당을 참관한 후에 건축가가 되겠다는 뜻을 세웠으며, 한국의 건축가 승효상은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일생일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라 투레트는 매우 독특한 세계다. 사방이 막힌, 치장없는 콘크리트 외벽 뒤로 불가사의한 빛과 그림자, 공간이 어루러진다. 공기 속에 고요함이 감돌고 공간 속에 고독이 가득 차 있다.

사람들로 가득찬 수도원의 작고 아담한 방에 들렀다. 그곳에는 3명의 젊은 여성 연주자가 코렐리와 마시티 같은 바로크 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었다.

위층 다락으로 이어지는 한쪽 계단에는 아이들이 제각각 아무렇게나 앉아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가끔씩 몸을 흔들며 반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바로크 음악은 아이들이 즐기기엔 좀 어렵다는 나의 편견을 보기좋게 깨뜨렸다. 선지식없이 그냥 저렇게 마음과 몸이 가는대로 반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감상이 아닌지.

뜻하지 않게 연주자와 관객 사이에 따뜻하고 친밀한 소통이 오고가는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어 얼마나 행운인지. 작은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더 큰 감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를 돌아 반대편 건물로 가자 그곳에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인도계 영국 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를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제13회 리옹 비엔날레(2015. 9. 10~2016. 1. 3)의 일부로 그의 전시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행운이 또 있을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카푸어의 동양적인 세계관을 반영한 작품들이 위치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공간이 있을까.

작품을 유심히 보고 있는 내게 한 아가씨가 다가왔다. 비엔날레 측에서 나온 도슨트였다. “설명이 필요하냐”며 먼저 말을 붙여왔다. 그녀를 독차지하고 곳곳의 장소를 돌며 13개의 카푸어의 작품 설명을 모두 듣는 순간의 정적과 내 마음 속에 인 감동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빛의 예술로 탄생한 라 투레트 수도원의 내부 기운과 카푸어 작품의 에너지는 하늘이 허락한 최고의 조합이었다. 종교를 상징하는 장식품들로 가득 차 있는 여느 성당들과 달리 이곳은 속이 텅 비어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없지만 빛이 시시각각 펼치는 변화는 화려함을 능가한다.

머무는 동안 언제나 카푸어의 작품 사이를 걸어다니며 때와 시간에 따라 작품 속에 다르게 담기는 수도원의 풍경을 맘 놓고 즐겼다. 기막힌 예술체험이었다. 내가 설계하지 않은 것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준비돼 있을 때, 오묘한 절정감을 느낀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라 투레트의 투박한 외형에 놀랐다. 그 안에서 지내는 동안은 그 투박함이 담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풍성함에 놀랐다.

그곳에서의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말을 했다. 침묵의 긴장감과 터질듯한 충만감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아마도 거기에 카푸어의 작품이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리옹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이곳에 카푸어 전시를 유치한 것은 제2의 쿠튀리에 신부라고 할 수 있는 마크 신부님 덕분이다. 처음 이 건물은 100명의 수도사를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지만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수도사는 10여분 남짓이다.

유난히 자주 마주친 마트 신부님은 방문하는 사람들 사이에 언제나 있었고, 전시된 작품들 앞에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도착하던 날 그가 진행하는 영어투어에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날 투어는 불어를 하는 신부님에 의해 진행됐는데, 지하의 납골당이자 비밀스런 기도처인 크렙타를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참석했다. 유명세를 말해주듯 많은 사람이 투어에 참여했다.

무색과 원색, 빛과 그림자를 활용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공간 구성 방식은 흥미로웠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의 벽 위에 천창을 통해 빛이 들어와 시시각각 다른 분위기를 변주하는 성당이나 지하 크렙타는 그대로 빛의 향연장이자 빛이 내 안에서 기도로 변주되는 묘한 공간이었다.

수도원의 내 외부 공간이 다 인상적이었지만 이 지하공간은 특히 그랬다. 어둡고 좁은 길을 따라 제의실 아래로 내려가면 그곳이 지하 크렙타이다. 지하라고 하지만 비탈진 외부에서 보면 엄연히 지상이다. 일곱 개의 제단이 비탈진 지형 그대로 배치된 그곳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설명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공간에 몇은 미처 떠나지 못하고 그 공간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수도사들의 개인 미사가 없어지면서 이 지하성당의 쓸모도 없어졌다고 하지만 이곳은 왠지 수도원의 혈관에 피를 제공하는 내밀한 심장처럼 여겨졌다. 넘실대는 빛 속에 몸을 맡기는 순간, 나는 잠시 자신의 존재를 잊었다. 신의 영광에 휩싸인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눈을 뜨자, 조금 전과는 다른 세계가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이런 영적 체험이 가능한 것은 이곳이 수도원이서만은 아닐 것이다. 무신론자라고는 하지만 르코르뷔지에의 영혼을 나는 이곳에서 본 듯 싶었다. 그를 무신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들의 편의적인 구분에 의한 것일 뿐, 그가 신을 만났는지 아닌지는 그만이 아는 진실일 것이다.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죽은 뒤 시신을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성당에 하룻밤 안치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인간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낼 곳으로 그는 라 투레트 수도원을 선택했던 것이다. 거장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총 4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역시 내게는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체험이다. 규칙적으로 드리는 경건한 미사와, 몇 안되는 수도사들이 암송하는 시편의 운율과, 공간을 휘돌며 잔향을 남기는 그들의 찬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건물을 지은 이의 염원과 마음이 곳곳에 녹아 있고 수시로 그것과 마주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이는 건축은 건물 이전에 생각을 짓는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 살 사람과 그들의 인생에 대해 간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누비고 다닌 수도원의 공간은 그래서 르 코르뷔지에 그와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 지내는 동안 나는 이 건축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그런 염원이 바로 이뤄졌다. 떠나는 날 사무실에서 만난 한장의 브로셔가 나로 하여금 그 다음 행선지를 피르미니-베르(Firminy-Vert)로 정하게 했다. 그곳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실험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더많은 그의 건축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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