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수단 잃은 빈 농장 적막감
뜬 눈 밤새운 농장주 깊은 한숨
“방역 철저히 했는데도 전염 피해
재입식 정상화 8개월간 무소득
정부, 사육 두수 외 보상외면” 불만
“최순실 사태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자식 같은 닭들이 땅 속에 묻히는 모습을 보니 피눈물이 난다.”
지난 주말 안성시 공도읍 신두리의 한 산란계 농장 앞은 인적이 끊긴 채 적막감만 감돌았다.
1985년부터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산란계 3만 마리를 사육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S농장 허모(51) 대표.
허 대표의 농장은 지난 14일 산란계에서 채취한 분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H5N6)가 검출돼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산란계 전부를 살처분 했다.
‘출입금지 방역본부’라고 적힌 안내판과 차단띠를 사이에 놓고 만난 허 대표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허 대표는 “올해 처음으로 AI를 경험했는데 야생철새로부터 전염됐을 것이라는 추정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한 원인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다. 철처한 방역에도 이렇게 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며 연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어 그는 “정부가 뒤늦게 항원뱅크 구축 등 대책을 내놨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AI가 한번 감염됐던 농장은 또 다시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장 내년에도 불 보듯 뻔하다. 농장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매년 연례행사처럼 AI가 발생하고 있지만 방역당국이 예산 문제로 확산 방지에만 열을 올리면서 AI 인체 감염 우려 속에 기록적인 살처분과 계란대란 등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정부가 항원뱅크 구축 등을 추진키로 했지만 전시행정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AI로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진 농장주들은 정부의 보여주기식 지원책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화성시의 한 양계농가를 운영하는 정모(55)씨는 “예방적 살처분 비용을 100% 보장해준다고 하지만, 살처분 되는 사육두수를 시세에 맞게 지급하는 것일 뿐 매몰에 필요한 인건비와 시간, 장비 등은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재입식까지 걸리는 기간동안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농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매몰 이후 다시 복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닭 20마리를 재입식 해 2주에 한번씩 안전검사를 실시하는 데만 3개월, 사육 등에 다시 4~5개월이 소요돼 8개월간은 손가락을 빨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해당 기간 동안 보상이 있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몇 번의 AI를 겪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3일 기준 도내 AI 감염 확진 농가는 총 72곳으로 살처분 됐거나 예정인 가금류는 모두 2천420만3천마리이며, 지난 달 16일 최초 의심 신고 이후 37일간 매일 평균 65만 마리씩 매몰된 것으로 나타났다./이상훈기자 l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