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목)

  • 흐림동두천 ℃
  • 흐림강릉 30.0℃
  • 서울 26.2℃
  • 흐림대전 29.2℃
  • 흐림대구 31.6℃
  • 구름많음울산 29.0℃
  • 흐림광주 27.7℃
  • 흐림부산 26.7℃
  • 흐림고창 29.2℃
  • 흐림제주 33.1℃
  • 흐림강화 24.2℃
  • 흐림보은 28.6℃
  • 구름많음금산 29.3℃
  • 흐림강진군 29.3℃
  • 구름많음경주시 30.6℃
  • 구름많음거제 26.3℃
기상청 제공

"제발 떠오르길"…1천72일을 기다려온 단원고 6명의 별

세월호 침몰 1천72일만에 마침내 시험 인양작업이 시작됐다.

인양에 성공해 세월호가 물 위로 떠오르길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려온 건,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3년의 세월을 버텨온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다.

이들 미수습자 가족에겐 아직도 아들, 딸,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사고 피해가 가장 컸던 단원고에선 희생 학생 4명과 교사 2명이 3년 가까운 긴 시간을 바닷속에서 기다려왔다.

수학을 유독 좋아했던 조은화(사고 당시 2학년 1반) 양은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우등생으로, 회계 분야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꿈이었다.

등교할 때면 '버스에 탔다'고, '어디를 지났다'고, '학교에 도착했다'고 엄마에게 문자를 했고, 집에 돌아와서 씻을 땐 엄마를 변기에 앉게 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조목조목 얘기하는 살가운 딸이었다.

엄마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앞에 앉아서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주고, 아침에 학교 갈 때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하굣길에 간식거리를 사와 건넬 정도로 정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던 허다윤(2반) 양은 중학생 때부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세월호 침몰과 함께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겐 친구 같고, 아빠에겐 애인 같은 딸이었던 다윤이의 모습이 엄마 눈엔 아직도 아른거린다.

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는 "아빠의 모자도, 다윤이가 입고 간 옷, 신발이 모두 올라왔는데, 다윤이만 나오지 않았다"며 "지난 3년간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견디고 기다렸다. 세월호를 인양해 우리 딸을 꼭 찾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만능스포츠맨으로 통했던 박영인(6반)군은 주말마다 부모님 여행에 항상 따라나서는 '엄마·아빠 바라기'였다. 특히 축구를 좋아해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운동장에 모여 공을 차는 게 일상이었다. 영인 군의 어머니는 사고 전 아들이 "축구화를 사달라"고 했지만, 미처 사주지 못한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영인이와 같은 반이었던 남현철 군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5반 고(故) 이다운 군의 자작곡 '사랑하는 그대여'의 작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의 한 중학교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해 줄곧 중학교에만 있던 고창석 교사는 2014년 3월 단원고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변을 당했다.

대학생 때 인명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던 고 교사는 세월호 사고 당일에도 고 남윤철 교사와 함께 학생들의 탈출을 돕느라 본인은 정작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원고 바로 옆에 있는 단원중 교사였던 고 교사의 아내는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 남편으로부터 받은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고 전했다.

양승진 교사는 학생들에게 듬직한 선생님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선체가 기울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이 있는 배 안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김준호·박국원기자 pkw09@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