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를 지우다
-치매행致梅行·11-
/홍해리
소식을 보내도 열리지 않는 주소
아내의 이메일을 지웁니다
첫눈은 언제나 신선했습니다
처음 주소를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 눈이 사로잡은 아내의 처녀
아직도 여운처럼 가슴에 애련哀憐합니다
이제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내 사랑입니다
열어보고 또 열어봐도
언제부턴지 받지 않는 편지를 쓰는
내 마음에 멍이 듭니다.
- 홍해리 시집‘치매행致梅行’ / 황금마루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섭니다’로 시작되는 시인의 「다 저녁때-치매행·1」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집에서는 세 아이와 여간 까다롭지 않은 시인님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수행하시던 현모양처”(임채우 시인의 발문 中)라는 시인의 아내. 어느 날 “집사람이 명사를 기억하지 못해”라는 시인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치매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 겪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첫눈에 내 삶의 모든 것을 같이 하고자 생각했던 주소였던 아내, 이제는 열어보지 않는 편지인데도 그녀 곁에서 쓰고 또 쓰는 주소로 나도 편지 한 통 띄우고 싶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