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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가지치기’

 

연거푸 ‘전국 장맛비 계속’이라는 기상예보가 이어졌다. 눅눅한 공간은 때로 마음을 녹녹하게 만들 때가 있다. 동이 트자 잠시 하늘이 개는 것 같아 장마철 틈새 공략으로 강아지 ‘해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촉촉하게 비를 머금은 골목에선 연거푸 쌉싸름한 냄새가 배어나왔다.

 

누군가의 손길이 오갔을 풀, 꽃, 나무, 오래된 건물마다의 냄새들로 채워진 길. 드문드문 그 길을 따라 걸어 다니는 사람들, 마치 흑백사진 속 풍경처럼 정갈하게 보였다. 한참을 걸어 아파트를 끼고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아니, 이렇게 예쁘단 말이야!’ 새로 돋은 줄기마다 풍성한 잎을 매달고 싱싱하게 웃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봄이 채 시작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공원의 조경수들을 가지치기 하던 때가 말이다. 과감한 가지치기로 하나같이 헐벗은 모습에 ‘저렇게까지 잘라야 하나’ 하며 안쓰럽기까지 했었는데. 잘려나간 생체기 위로 풋풋한 새순을 내밀고 또 다른 얼굴들을 선보이다니. 다닥다닥 엉켜있는 명자나무 무리는 참새 가족을 품었는지 작은 참새들이 연신 들락거렸다. 저 나무들에게는 서로 햇살을 더 받겠다며 뒤엉켜 자란 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낸 것이 어쩌면 다시 한 번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갈 기회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새롭게 뻗어낸 가지들로 더더욱 싱싱한 공원의 나무들을 보다말고 어쩌면 ‘내 생각의 가지치기’야말로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갖가지 이속으로 뒤엉켜 있는 ‘내 생각, 걱정의 가지치기’말이다. 생각에 이은 걱정은 곧 그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걱정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임에도 끊임없이 걱정걱정하며 속을 끓이는 경우가 많았다. 드문드문 지난 명절에 있었던 일까지 끄집어낸다든가, 혹시나 하는 건강문제, 노후문제, 자식문제, 이것저것 기웃거려보는 자기개발 문제까지. 간혹 친구의 고민까지 덤으로 불러들여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걱정, 일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할 때가 많다. 결국 스스로 불러들인 걱정에 뒤엉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 생각의 가지치기’는 곧 ‘내 삶의 가지치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 즉 일거리의 줄을 세우고 당장 해결해야할 일과 천천히 해결할 일, 서서히 해결해야할 일,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우선 구분하고 가지치기를 시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가로수나 조경수의 가지치기를 주기적으로 하듯 일 년에 한 번 또는 수시로 내 복잡한 생각들을 펼쳐놓고 과감히 행해지는 가지치기. 뒤엉킨 생각들을 미련 없이 잘라내고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일상은 또 얼마나 풋풋할까. 마음이 한결 가볍기도 하겠지만 더 멋진 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에 얽매이기보다 묵은 나를 툴툴 털어내고 다시 한 번 새로운 ‘나’를 시작해본다는 건 보다 멋진 일이 아닐까. ‘나’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기회,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침 산책을 하다말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내 생각의 가지치기’를 과감하게 실천하며 나아가는 ‘나’가 주인공이 되는 그런 밑그림을 말이다. 강아지 ‘해치’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 하늘에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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