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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백수 연가

 

하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데 바로 아랫집에 사는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얼굴을 자주 마주쳤던 터였고, 한동안은 아들이 뛰어다녀서 층간소음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몇 차례 인사를 간 일도 있어서 가깝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알고 지내는 정도는 되었다. 그날도 인사를 하고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가 내게 말을 붙였다.

“혹시 대학 졸업했습니까?”

나는 졸업했다고 말했다.

“그럼, 내가 학원을 하고 있는데 혹시 나와서 강의해 볼 생각 없어요?”

오? 말로만 들었던 스카우트?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내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 그리고 내가 뭘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산에서 작게 학원을 하고 있는데, 하는 일 없으면 우리 학원에 나와 강의 해봐요. 보아하니 젊은 사람이 집에만 있는 거 같은데. 뭐든 해야지.”

얼굴이 붉어졌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그 분은 마음 내키면 연락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는 그 분의 뒤를 따라 나가 출근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다른 분들 역시 그 분처럼 나를 백수로 생각했을 터였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난 백수다. 그 즈음의 나는 글을 생산했지만 생활하는 데에 크게 보태지 못했고, 보통의 남자들이 아침이면 허둥대며 출근하는데 나는 슬리퍼 신고 내려가 세상 한가한 듯 담배나 물고 있었으니 백수로 봐도 이해해야 했고 한심하게 쳐다봐도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아내도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 같은 라인에 사는 분들 보기에 우리 부부가 얼마나 답답해 보였을까. 아내는 이미 작가였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알 턱이 없었다. 그 아파트에서는 8년쯤 살고 이사를 했는데 끝내 나와 같은 아파트 라인에 사는 분들은 우리 부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 때문에 가깝게 지내던 몇몇 분은 우리 부부의 직업을 알게 되었지만 가까워지기 전까진 그 분들도 그리 생각했던 듯했다. 아이 방과후에 아이들과 놀이터에 놀러 나오는 사람들이 보통은 엄마인데 간혹 아들과 나오는 날 보면서 뭘 하느냐 묻지 못했을 터였다.

그 집에서 이사 나오기 전, 아무래도 집에서만 글을 쓰니 집중력이 떨어져 도로 건너편의 도서관을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 먹고 집을 나가 보통의 가장들처럼 퇴근 시간에 들어왔다. 하지만 도서관에서도 백수의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하루종일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작업하거나 책 읽고 점심 식사까지 구내 식당에서 해결하니 어쩌다 마주쳐 눈에 익은 분들도 나를 백수로 알고 있을 공산이 컸다. 도서관을 다니며 새삼 도서관이 시간보내기에도 내 작업을 집중있게 하기에도 훌륭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 떠들면 사서분들이 조용히 시켜주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스스로 조용히 해서 집중력을 기르는 데는 금상첨화였다. 그 시간들 덕이었겠지만 본격적으로 도서관에서 작업을 시작한 후 1년쯤 지나 나는 큰 문학상을 하나 받게 되었다. 그 후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새로 이사 온 지금의 아파트에서도 바로 옆 집에 사는 분들이 우리 부부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다. 만약 이번에도 학원 선생님을 해보지 않겠느냐 제안이 온다면 얼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릴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