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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소국향(小菊香)에 담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 소국이 어우러진 푸짐한 꽃바구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뭐지?’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뜬금없이 우리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이. 친구를 반기듯 꽃바구니를 집안으로 들여 차근차근 들여다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짙은 향이 나는 잘디잔 소국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군데군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눈송이 같은 꽃봉오리가 여리디여린 미소를 띠고. 날개처럼 울타리를 치고 있는 초록의 잎사귀들. 알록달록한 소국의 꽃망울은 빨갛고 작은 장미를 품은 채 잔잔한 위로를 보내오듯 끊임없이 재잘재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소국 좋아하는 나를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친구의 마음처럼, 촉촉한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들처럼 말이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아주 특별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서히 익어가는 인생처럼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또 다시 잘 이어가다가도 각자의 풍파에 조난을 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옛말에 ‘사이좋은 벗끼리 마음을 합치면 단단한 쇠도 자를 수 있고, 우정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와 같다’라고 했는데 그 사이좋은 친구란 참으로 갖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도 싶다. 스스로 용기를 갖고 각별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좋은 친구.

 

그런 좋은 친구를 갖기에 나는 늘 부족함이 많았던 것 같다. 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날 수도 없고 내가 힘들고 지칠 때는 친구에게 의논하기보다 혼자 해결할 때가 더 많았으니 말이다. 철따라 꽃피고 꽃이 지듯 문득문득 친구가 간절히 떠올랐지만 이내 잊곤 했으니 항상 그렇게 나는 정성과 노력이 부족했던 것. 하지만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내 좋은 친구로 인해 막상 만나서 갖은 수다를 쏟아내다 보면 어제 본 듯 가까워지고 정겹기만 친구가 될 수 있었으니 내가 소중한 친구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그 친구의 따스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30년은 된 듯하다 그 친구와의 인연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의논하고 아이들 키우며 힘들 때마다 서로 힘이 되어 주었던 사이. 어느 날 두 가족이 함께 강화도 여행을 갔던 날, 전등사 ‘나부상’에 대한 전설을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아이들과 진지하게도 토론을 했던 기억이 어제인 듯 생생하다. 와글와글 끓어대는 벅찬 대화보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도 간간히 사랑을 전하며 더 용기 얻고 힘을 얻게 해 주는 관계. 그런 여러 가지 공통점에 더하여 무엇보다도 촉촉한 감성을 지녔다는 공통점으로 만나기 시작했던 친구. 며칠 전 문자로 하루하루 삶에 지쳐가는 나를 느낀 친구가 보내온 손길. 오늘은 그렇게 밤새 하얗게 퍼부어댄 눈-길을 걸어 다닥다닥 소국향에 담아 보내온 친구의 마음을 읽어보려 한다.

 

‘친구야, 코로나19가 심하다 하나 우리 씩씩하게 다시 한 번 힘내보자’

 

꾹 꾹 눌러쓴 친구의 마음을 알겠기에 눈물 한 번 꾹 참아내고 환하게 웃어보려 한다. 오래오래 숙성시킨 장맛처럼 입안을 에둘러 온 몸을 가득 채워 가슴까지 따스하게 하는 친구의 사랑. 다음엔 나 먼저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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