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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 염원’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교수 24일 밤 타계

강대석 교수, “외세를 몰아내고 조국통일 이루자” 마지막 말 남겨
1980년 5·18광주 민주화운동 계기 유물론철학 전환
박근혜 정권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고초 겪기도

 

“여러분 모두 조국통일에 관심을 가져 후손들에게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남겨주지 맙시다.”

 

24일 밤 9시 48분 지병으로 타계한 故(고)강대석 유물론철학자가 지난해 8월 17일 자신의 탄생 78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전한 인사말 중 한 부분이다. 

 

유물론철학자 강대석에게 있어 ‘조국통일’은 평생의 목표였다. 1943년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서 태어난 그는 경북대학교 사범대 교육과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유학길에 올라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 독일사를 공부했고,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 미학을 연구했다.

 

본래 관념론철학을 수학한 그가 유물론철학으로의 전환을 한 계기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이었다. 당시 전남대학교에 다니던 여동생이 민주화운동에 참가해 계엄군의 곤봉에 중상을 입자 그는 신이나 초월적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론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강 교수는 생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인공은 자신이란 말을 자주 했다. 그는 사회를 건전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1987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창립회원으로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이어 통합진보당 대전시당 고문을 거쳐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의 상임고문을 맡아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는 6·15 남북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의 가입단체였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던 강 교수는 박근혜 정권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압수수색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지난 2002년 중국 연변대학 교환교수 시절 연변의 한 상점에서 북한 그림과 도자기 등을 구입하고 북한 공작원인 상점 주인 부부와 접선했다는 것이 경찰의 이유였다.

 

강 교수는 4년이라는 긴 시간 조사를 받았고, 그 기간 동안 암이 발병해 신장 하나를 제거해야만 했다. 진통제로도 억제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 그를 괴롭혔지만, 우리 사회의 모순 해결과 민족의 진로를 개척하고 조국통일을 바라는 그의 열정만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1984년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이라는 저서를 시작으로 1991년 ‘유물론과 휴머니즘’, 2006년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시인 김남주’, 2020년 ‘유물론의 과거와 현재’, 2021년 ‘플레하노프 생애와 예술철학’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상임대표인 박해전은 추도사에서 “생애 마지막 시기 강대석 동지를 문병한 김한성 6·15 학술본부 상임대표는 동지가 뿌리가 돼 가꿔온 유물철학의 꽃이 이 땅에서 더욱 무성하게 열매를 맺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도 계승해 그 길에 함께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유물론철학자 강대석 교수의 몸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은 참된 철학과 조국통일을 밝히는 별로 빛을 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가는 길 역시 “외세를 몰아내고 조국통일을 이루자”라는 말을 남긴 강대석 교수. 죽음의 문턱에서도 통일을 생각한 강 교수는 하늘의 별이 돼 조국통일의 길잡이로 빛나지 않을까 싶다.

 

[ 경기신문 = 김도균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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