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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나는 코스몰리탄이다. 나는 스파이다.

⑦ 스파이의 아내 - 구로사와 기요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공포 그 자체이다. 환희나 기쁨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길과 같다. 세계관이 바뀌는 일이다. 무섭고 두려워진다. 그래서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는 안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공포영화의 작법이 어울린다. 공포영화가 꼭 진실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영화는 공포영화다.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를 알게 된 후 스파이로 변신하는 부부의 이야기, 그 어둠과 두려움의 이야기인 ‘스파이의 아내’를 공포영화의 대가(大家)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만든 이유다. 그게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파이의 아내’는 첩보 스릴러보다는 심리 스릴러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그녀는 나를 밀고할 것인가. 그녀가 나를 밀고하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그것을 다시 그녀가 알게 됐고, 그렇게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식의 반복되고 중첩되는 배신과 의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두운 시대일수록 세상의 모든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람의 마음 속 우물도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그를 배신한다. 남편 역시 아내를 위해 그녀를 배신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배신인가 사랑인가. 이 둘은 국가 기밀을 외부로 반출시키려 한다. 그 기밀은 끔찍한 만행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매국노인가 애국자인가. 국가가 사람들을 배신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사람들은 국가를 배신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는 것이 맞는 것인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국가가 번영해야 개인도 행복한 것인가. 아니면 그 둘은 한 몸인가, 별개인가. 그렇다면 과연 국가와 개인은 무엇인가.

 

영화는 점점 더 중층의 문제의식을 하나하나 던져주기 시작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를 넘어 지금 당장의 시대 의식에 근접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과연 그때와 달리 진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암흑 속에 있는가. 역사는 반복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한발자국 씩이라도 진보하고 진화하고 있는 것인가.

 

영화의 배경은 1940년의 고베 시이다. 조금씩 조금씩 패전의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는 때이다. 일본 군국주의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 세계를 향해 전선을 급속히 확대시킨다. 일본 군부는 집단적 광기로 완전히 돌아섰으며 결국 1941년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미국까지 세계대전에 끌어들인다.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일본 사회는 점점 더 어둠의 구덩이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작은 다소 한가해 보인다. 아니 그보다는 한가한 척하고 있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주인공인 유사쿠-사토코 부부는 전쟁과는 아랑곳없다는 듯 영화를 찍으며 보낸다. 감독은 남편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 주연은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와 이들의 외조카 후미오(반도 료타)이다.

 

영화 속 영화의 여주인공은 남편 몰래 그의 금고를 뒤지려고 한다. 영화 속 영화의 남편은 그런 그녀를 뒤에서 낚아챈다. 남편은 여자의 무도회 가면을 벗긴 후 금고를 열려고 했던 사람이 자신의 아내였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 속 영화는 이후 라스트 씬을 완성하며 회사 망년회 때 공식 상영된다. 영화 속 영화의 결말은 남자가 여자를 떠나보내는 척 등 뒤에서 총을 쏴 그녀를 죽이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죽인 여자를 품에 안고 슬퍼한다.

 

무성영화로 찍힌 이 영화 속 영화는, 많은 것을 암시하는 액자영화이다. 궁극적으로 영화 ‘스파이의 아내’가 어떤 이야기로 흘러가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 가를 짐작케 한다. 똑똑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 속 액자영화 안에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취미로 영화를 찍을 정도인 걸 보면 주인공 유사쿠는 상당한 리버럴리스트임이 틀림없다. 재력가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외국, 특히 적대국으로 불리는 영국이나 미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해서 상당한 돈을 벌어 온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런 유사쿠에게 내부 반역행위를 색출하는 군 헌병 당국의 압박이 조여 오기 시작한다. 유사쿠가 상대하는 영국인 사업자가 스파이라는 것이다. 아내 사토코는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오직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 하나로 살아간다. 그녀의 삶은 전쟁 중임에도 매우 풍족하다. 세상은 웃음을 잃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모든 일의 시작점은 남편 유사쿠가 조카 후미오와 함께 만주로 한 달 간 출장을 다녀오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둘은 뭔가 비밀스러운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이들이 만주에서 데려온 것으로 의심되는 묘령의 여자 히로코(현리)는 급기야 강가에서 시체로 떠오르기까지 한다. 두 사람은 곧 살인 용의자로 감시를 받게 되는데 그 와중에 내용을 알 수 없는 노트와 필름을 숨기기에 급급해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토코는 남편 몰래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 경악하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되기 전 사토코는 남편에게 거세게 항의한다. 당신은 매국노가 되려 하느냐고 추궁한다. 유사쿠는 아내에게 자신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은 코스모폴리탄이라는 것이다. 아내는 두 사람을 군 헌병 당국에 고발하고 조카 후미오는 곧바로 체포돼 손톱 10개가 뽑히는 극심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 준다. 무엇보다 전쟁 중 일본의 내부, 그 내면이 어떠했는 가에 대해 이만큼 솔직한 토로는 처음이라는 느낌을 준다. 군국주의로 인해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썼음을 보여준다. 군부가 앞장서 미쳐 돌아가는 행태를 보인다해도 보통의 일본인들은 그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군국주의에 대해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동의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념과 사상,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된 상황 속에서도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의 일상이 만만찮은 두께로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 내 상당수의 지식인은 세계동포주의란 이름으로 반정부 및 반체제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역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고 자신들이 오랫동안 그것을 비판하고 지적해 왔다는 것에 대한 우회적인 주장으로 이어지는 대목이어서 꽤나 흥미롭다.

 

지금껏 자신들의 과거 군국주의 역사를 다뤄 온 일본 영화 가운데 ‘스파이의 아내’처럼 비교적 처절할 만큼 자기 반성적인 작품은 없어 보인다. 이건 한국이나 주변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 자신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의 일본사회가 아직은 꽤나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역작이다. 그의 세계관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만들고 잉그리드 버그만과 캐리 그란트가 나왔던 1946년 영화 ‘오명’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스파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러브 스토리다. 그런 점에서 닮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팬데믹 탓에 일반 개봉이 미뤄져 오던 가운데 영화 팬들이 줄기차게 기다려 온 작품답다. 일본 내 군국주의 잔재가 여전히 강고하지만 그에 대한, 지식인다운 격렬한 문제의식이 느껴져서 반가운 작품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은 우리의 극우주의로 이어진다. 두 가지는 초록의 동색이다. 우리가 구로사와 기요시와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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