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로렌스가 16일(한국시간) 끝난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올해의 가장 큰 이변으로 꼽혔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녀의 연기가 거의 최고급이었기 때문이다. 제니퍼 로렌스는 지금까지의 연기 인생에서 거의 정점을 찍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혼이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광적으로 연기해 냈지만, 그 생생함이 투표권을 지닌 일부 아카데미 회원들에게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모습으로 비춰 불편함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니퍼 로렌스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자체가 다소 난해하고 요령부득의 내용인 탓에 대중성을 선호하는 아카데미와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케빈에 대하여'(2011)로 한국에 많이 알려진 감독 린 램지의 이번 신작 '다이 마이 러브'는 일반 영화와는 다른 화면 비율(1.33:1, 흔히들 4:3 화면이라 한다)로 시종일관 시선을 박스권 안에 가둬두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화면 비율은 영화 역사 초기에 쓰인 것으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현대영화는 대체로 비스타 비전(1.85:1)으로 찍는다. 가로 화면이 길다. 가로 화면을 조금 더 극단으로 늘린 것이 시네마스코프이다. 거의 3:1(2.39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이 어떻게 될지,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짐작하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적어도 영화와 관련해서는 분명한 점이 하나 생겼다. 앞으로 할리우드는 미국 우선주의를 그린 군사 액션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란이나 이슬람 문화권을 지나치게 악마화한다든지 하는 이야기에 있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할리우드는 장삿속에 능한 곳이고 지금은 ‘명분 없는’ 전쟁을 그린 얘기가 돈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제니퍼 로렌스 주연으로 한동안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는 미국 젊은이들의 월 가 점령 시위, 곧 ‘오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위는 2011년 9월 17일 월 가에서 시작돼 미국 내 수십 개 도시로 빠르게 확산했고 심지어 파리와 베를린까지 번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금융자본가들의 호의호식이 드러나자 젊은이들의 분노가 최고조로 치솟은 것이다. 당시 시위대는 미국 내 부의 불평등이 정치적 부패와 민주주의의 훼손에 기인한다고 판단했다.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 1편인 ‘헝거게임: 판엠의
젊었을 때 큰 인기를 누렸던 남자배우가 나이를 먹으면서 잃는 것은 잘생긴 외모이고 얻는 것은 주름이 주는 너그러운 인상이다.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의 주인공 브랜든 프레이저에게서 이제 '미이라'(1999) 때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급격하게 늘어난 체중으로 배우로서의 삶이 추락할 때 그는 '더 웨일'(2022)을 통해 차라리 272㎏이라는 극단적 몸집의 캐릭터(특수분장)를 연기해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신작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에서는 인생의 굴곡과 파고를 겪은 사람 특유의 밑바닥 인고(忍苦)의 표정을 현실감 있게 연기해 낸다. 영화를 만든 감독 히카리(본명 미야자키 미쓰요)가 브랜든 프레이저를 캐스팅한 건 역설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일본 사회의 특수한 문화를 반영하는 역할 대행 서비스란 직종에서 백인 남자가 일한다는 건 아무래도 이야기를 짜맞추기가 쉽지 않거나 아예 억지스러운 일이 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 역할을 일본인 혹은 아시아인이 했다면 영화는 오히려 정말 그렇고 그런 신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제목인 ‘렌탈 패밀리( レンタル・ファミリー, 렌타루 파미리)’는 영화 속에
개봉 직후 폭발적인 입소문과 함께 2주 만에 200만 관객을 넘은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인기와는 다르게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영화이다. 흥미롭고 특이한 점은 그 흠결들조차 대중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영화의 패착은 다소 즐비하게 나열되며 때론 불필요해 보이는 코미디의 요소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흥행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장항준은 슬랩스틱 형 코미디 드라마(‘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리바운드’)에 장기가 있는 감독이다, 가 아니라 자신의 장르적 변신(‘기억의 밤’ ‘오픈 더 도어’)을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감독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감독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건 당위의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장항준 표 코미디 사극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내용은 사실 무거운 얘기이다. 옛날 작가 이광수가 쓴 '단종애사'와 같다. 조선 왕조 초기는 그야말로 피 바람의 역사였다. 특히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한명회와 함께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했던 1453년의 계유정난 때 서울 종로의 재동(지금의 헌법재판소 일대)은 황보인
우연찮은 기회에 다카이치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 233석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의석수(316석)를 차지하며 압승을 거둘 때 도쿄에 체류했다. 날이 많이 흐렸고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폭설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상은 고요했다. 에노시마 기차역 슬램 덩크 관광지에는 푸릇한 한국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다카이치든 자민당이든, 중도당이든, 공명당이든 일본 사람들은 정치에 무심해 보였다. 하루 이틀 머물다 스쳐 가는 사람처럼 일본 국민은 정치는 정치, 민생은 민생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사카에 있는 방송국 TBS 앞에는 공산당 깃발을 꽂은 유세차 위에서 초로의 여성 당원이 목소리를 높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빌보드 팻말에는 부자증세라 쓰여있었다. 도쿄를 안내했던 영화 관계자 지인이 말했다. “들어 보면 일본 공산당 친구들이 가장 정확한 얘기를 해요. 똑똑한 애들은 역시 좌파이긴 해요.” 다카이치가 이겼으니 센카쿠 분쟁 문제니, 쿠릴 열도 반환 문제를 둘러싼 정책이 바뀔 것이다. 성향이 공격적이니만큼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군사력을 강화할 것이다. 자위대 설치와 운용범위에 관한 법률을 바꾸고 무엇보다 평화헌법이란 미명으로
화제작 ‘하우스메이드, The Housemaid’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는 사실 따로 있다. 주연인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소름 끼칠 정도의 광적인 연기를 펼쳤고 또 다른 주연인 시드니 스위니가 아직 젊고 어린 나이에도(1997년생) 놀랄 만한 알몸 연기와 베드신을 선보였지만, 올드팬들에게는 엘리자베스 퍼킨스의, ‘알아보기 힘든’ 노년의 모습(1960년생)이 더 놀랍다. 40년 전 ‘어젯밤에 생긴 일’(1986)에서 데미 무어와 나와 스타덤에 올랐고 영화 ‘빅’(1988)에서 톰 행크스의 상대역으로 나와 인기 절정이었던 배우다. 이번 ‘하우스메이드’에서는 남자 주인공 앤드루(브랜든 스클레너)의 엄마로 나온다. 대사도 많지 않다. 깡마르고 성질이 이상한, 뭔가 정신질환의 근원 같은 느낌의, 늙은 여자로 나온다. 스타도 다 한 시절이 있고 그것은 또 순간 지나간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하우스메이드’는 처음엔 오래전, 전설이 된 B급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1992)의 리메이크가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게 한다. 일단 안정적인 집안에 가사도우미가 들어오고 그 여자와 집의 여주인, 그리고 그녀의 남편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정 살인극이라는 테두리가 흡사하다. 그러나
2020년에 발간된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 ‘피가 흐르는 곳에, If it bleeds’의 모든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 극장가의 구석, 곧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거의 종영을 기다리고 있는 ‘척의 일생’도 이 중단편집에 두 번째로 실려 있는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답게 다소 기이한 공포의 감성도 섞여 있는데 예컨대 척의 할아버지 앨비(마크 해밀. 맞다.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그 마크 해밀이다)가 어린 손자인 척(벤자민 파자크)에게 절대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지붕의 골방과 같은 존재가 그렇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절대 금기시하는 그 방에는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할아버지 앨비는 이 방문을 연 손자를 계단으로 밀쳐 낸 후 방 안의 ‘어떤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미스터리는 스티븐 킹의 장기이자 일종의 낙관 같은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그의 소설 속 요소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 전체의 주제를 밀고 나가는 하나의 소도구이자 맥거핀(MacGuffin: 눈속임 장치)일 뿐이다. 그의 작품에는 그보다 더 심오한, 인생과 세상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감독인 마이크 플래너건 역시 지금까지 ‘오큘러스’나 ‘힐
중국 배우 저우둥위(주동우)의 출연작 <먼 훗날 우리>는 2018년 개봉 당시 중국 국내에서만 약 13억 7000만 위안(우리 돈 약 2500억 원)을 벌어들였다.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만약에 우리>는 <먼 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영화이다. 이 한국 영화는 지난 세밑(12월 31일)에 개봉해 2주 만에 관객 120만 명을 모았다. <만약에 우리>의 흥행은 여러 시그널을 주고 있다. 사실 원작인 <먼 훗날 우리>는 대만 감독이 만든 것이어서 중국 영화계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시스템을 은근히 구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번 한국의 리메이크와 흥행 성공의 예감 역시 한-중간의 새로운 문화협력을 넘어 지난 시대에 내려진 한한령(限韓令)의 중단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른 각도로 보면, 극장과 OTT 플랫폼 특히 넷플릭스가 공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먼 훗날 우리>가 넷플릭스로 공개된 이상 그것을 다시 극장용으로 만든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극장
영화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넷플릭스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이다.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은 단 회 형식으로 한 편씩 공개돼 오고 있다. 러닝타임은 대략 2시간 10여 분씩들이다. 이번이 세 번째로 부제는 ‘웨이크 업 데드 맨’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죽은 자가 (예수처럼) 살아나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돼 있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미스터리 추리극을 골간으로 한다. 주인공이 사설탐정이다. 이름은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다. 블랑 탐정의 캐릭터는 1회 때는, 아무리 댄디한 신사형으로 바꿨다 한들 명백히 전설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에르퀼 푸아로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2편을 거쳐 이번 3편에서는 역사상 지금까지 손에 꼽을 수 있는 여러 사립 탐정 캐릭터를 다 혼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도 들어 있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도 들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더블버튼 재킷 정장을 입고 다니며 총을 갖고 다니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지략과 통찰, 혜안으로 사건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데 있어 모두가 ‘도사급’이다. 기본적으로
프랑스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한국 극장가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런 영화일수록,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지만, 수작이다. 단아하다. 그 안에 많은 말을 담고 있다.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안 되는 이유는 프랑스 영화이기 때문에? (시장의 할리우드 의존도가 병적인 수준이다)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의 영화 주 소비층이 잘 모르는 배우이다) 그것도 아니면 내용이 지난 시대 얘기여서? (1980년대가 배경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어쩌니저쩌니 이 영화를 외면하는 것이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엘리자베트(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막 이혼한 상태다. 정확하게는 ‘당’했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엘리자베트는 각각 고등학교 고학년과 저학년인 딸 쥬디트(메간 노섬)와 아들 마티아스(키토 라용-리슈테르)를 키우는 중이다. 애들이 커 갈수록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디디에 산드로)는 그런 딸이 내심 불안하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도와주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라는 걸 서로가 잘 안다. 엘리자베트는 남편 의존도가 높았던 전형적인 생활 주부였다. 새로 일을 시작하기도 늦은 나이다. 불안하고 무섭다. 그녀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