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발간된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 ‘피가 흐르는 곳에, If it bleeds’의 모든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 극장가의 구석, 곧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거의 종영을 기다리고 있는 ‘척의 일생’도 이 중단편집에 두 번째로 실려 있는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답게 다소 기이한 공포의 감성도 섞여 있는데 예컨대 척의 할아버지 앨비(마크 해밀. 맞다.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그 마크 해밀이다)가 어린 손자인 척(벤자민 파자크)에게 절대로 올라가면 안 된다는 지붕의 골방과 같은 존재가 그렇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절대 금기시하는 그 방에는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할아버지 앨비는 이 방문을 연 손자를 계단으로 밀쳐 낸 후 방 안의 ‘어떤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미스터리는 스티븐 킹의 장기이자 일종의 낙관 같은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그의 소설 속 요소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 전체의 주제를 밀고 나가는 하나의 소도구이자 맥거핀(MacGuffin: 눈속임 장치)일 뿐이다. 그의 작품에는 그보다 더 심오한, 인생과 세상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감독인 마이크 플래너건 역시 지금까지 ‘오큘러스’나 ‘힐
중국 배우 저우둥위(주동우)의 출연작 <먼 훗날 우리>는 2018년 개봉 당시 중국 국내에서만 약 13억 7000만 위안(우리 돈 약 2500억 원)을 벌어들였다.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만약에 우리>는 <먼 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영화이다. 이 한국 영화는 지난 세밑(12월 31일)에 개봉해 2주 만에 관객 120만 명을 모았다. <만약에 우리>의 흥행은 여러 시그널을 주고 있다. 사실 원작인 <먼 훗날 우리>는 대만 감독이 만든 것이어서 중국 영화계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시스템을 은근히 구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번 한국의 리메이크와 흥행 성공의 예감 역시 한-중간의 새로운 문화협력을 넘어 지난 시대에 내려진 한한령(限韓令)의 중단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른 각도로 보면, 극장과 OTT 플랫폼 특히 넷플릭스가 공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먼 훗날 우리>가 넷플릭스로 공개된 이상 그것을 다시 극장용으로 만든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극장
영화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넷플릭스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이다.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은 단 회 형식으로 한 편씩 공개돼 오고 있다. 러닝타임은 대략 2시간 10여 분씩들이다. 이번이 세 번째로 부제는 ‘웨이크 업 데드 맨’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죽은 자가 (예수처럼) 살아나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돼 있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미스터리 추리극을 골간으로 한다. 주인공이 사설탐정이다. 이름은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다. 블랑 탐정의 캐릭터는 1회 때는, 아무리 댄디한 신사형으로 바꿨다 한들 명백히 전설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에르퀼 푸아로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2편을 거쳐 이번 3편에서는 역사상 지금까지 손에 꼽을 수 있는 여러 사립 탐정 캐릭터를 다 혼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도 들어 있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도 들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더블버튼 재킷 정장을 입고 다니며 총을 갖고 다니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지략과 통찰, 혜안으로 사건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데 있어 모두가 ‘도사급’이다. 기본적으로
프랑스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한국 극장가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런 영화일수록,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지만, 수작이다. 단아하다. 그 안에 많은 말을 담고 있다.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안 되는 이유는 프랑스 영화이기 때문에? (시장의 할리우드 의존도가 병적인 수준이다)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의 영화 주 소비층이 잘 모르는 배우이다) 그것도 아니면 내용이 지난 시대 얘기여서? (1980년대가 배경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어쩌니저쩌니 이 영화를 외면하는 것이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엘리자베트(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막 이혼한 상태다. 정확하게는 ‘당’했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엘리자베트는 각각 고등학교 고학년과 저학년인 딸 쥬디트(메간 노섬)와 아들 마티아스(키토 라용-리슈테르)를 키우는 중이다. 애들이 커 갈수록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디디에 산드로)는 그런 딸이 내심 불안하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도와주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라는 걸 서로가 잘 안다. 엘리자베트는 남편 의존도가 높았던 전형적인 생활 주부였다. 새로 일을 시작하기도 늦은 나이다. 불안하고 무섭다. 그녀는 그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가. 영화산업을 재생시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충천하지만 이렇다 할 구체적 방안이 실효성 있게 전개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안다. 문제는 돈이고 그 돈은 우리나라의 관료제 조직 구조 내 최고 권력인 기획재정부에 막혀 있다. 내년도 예산은 이미 정해져 있어, 움치고 뛸 여력도 없다. 한국의 국가 총예산은 2025년도 기준 677조 정도였고 이 중 문화 예산은 7조 600억 원 정도였다. 1%를 약간 상회한다. GDP가 비슷한 수준인 국가 중 호주와 캐나다에 비하면 좀 높고(각 0.5%) 프랑스와 비슷하며 독일(1.9%)보다는 좀 낮지만, 국가 구성 형태가 다르고 지원 분야가 세부적으로 달라 등가 비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 돈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곳에, 적절한 규모로 쓰이고 있느냐이다. 한국 영화산업은 최대 위기 국면에 있다. 2025년 총관객 수는 1억 2000만 명을 밑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1억 명을 넘겼다는 안도감을 가지게 될 만큼 바닥을 쳐도 한참을 쳤다. 2019년 관객 수 2억 6000만 명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이다. 관객들이 물밀듯 빠져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금은 뭘 해도 안되는 때이며 웬만한 영
영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이다 못해 추악한 논란에 휩싸였던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당시 주연 여배우였던 마리아 슈나이더의 입장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솔직히, 주요 관계자들이 다 고인이 됐기 때문이다.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말년을 휠체어에서 지내다 (마치 이 영화에서 지은 죄과의 대가를 치른다는 듯) 타계했고, 말론 브랜도는 그 훨씬 전에 죽었으며 마리아 슈나이더 역시 비교적 젊은 50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베르톨루치는 강간 신을 찍는 과정에서 대본에도 없었고, 여배우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로 실제처럼 (실제였을 수도 있는 데다 그것도 항문 섹스 장면이었다) 촬영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미국의 한 좌절한 중년 지식인 남자 폴(말론 브랜도)이 파리에 와서 젊은 여자 잔느(마리아 슈나이더)를 만나고 격렬한 일탈의 정사 신을 이어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1972년 작이다. 이때의 베르톨루치 감독은 '순응자'를 찍은 후였고 '1900년'을 찍기 전이었다.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를 넘어서서 유럽의 역사, 서구의 역사를 격렬한 서사의 드라마로 만들어 내는데 일가견이 있었으며 당시의 여타 감독들이 그랬듯
영화는 스스로 각성해 사회를 각성시키려 한다. 그러나 각성하길 원하는 사회 주체들은 정작 영화를 볼 시간과 여유가 없다. 반대로 각성의 대상들은 영화에 무관심하다. 계급사회에서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이 고립되는 이유이다. 대만 영화 ‘왼손잡이 소녀’의 운명이 딱 그렇다. 뼈아픈 모녀 3대의 가족 얘기이고 비교적 참담한 얘기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만 귀 기울일 뿐, 정작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개봉 일주일 만에 전 극장에서 사라졌다. VOD, IPTV, OTT를 떠돌겠지만, 극소수의 지지자들만이 남을 것이다. 배경은 타이베이의 야시장이다. 엄마 슈펀(채숙진, 蔡淑臻)은 큰딸 이안(마사원, 馬士媛)과 둘째 딸 이징(엽자기, 葉子綺)을 데리고 국수 가게를 연다. 첫째는 갓 성인이 된 나이지만 둘째는 아직 5살이다. 두 아이는 아빠가 다르다(고 짐작된다. 사연이 있어 보인다). 세 모녀는 사는 게 각박하다. 슈펀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늘 월세를 내지 못한다. 죽어가는 전 남편, 이안의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으로 보인다. 이 남자는 결국 장례 부담까지 남기고 죽는다. 죽은 남자는 한때 슈펀의 본가를 도와줬던
시장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고 관객 동원력은 떨어져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른바 종(種) 다양성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계절적인 요인도 무시하지는 못한다. 연말이고, 해를 넘기기 전에 ‘묵은’ 영화들을 밀어내려는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배급을 지원받은 독립영화의 경우 약속된 규정에 따라 해를 넘기기 어려울 작품도 꽤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수작인 작품들,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눈에 띄는 외화들이 많다. 예컨대 대만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미국 션 베이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대만 영화가 요즘 뜨고 있다. 중국 제작의 블록버스터 '난징사진관'은 중국에서는 8452만 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관객 수가 나오고 있는 작품이다. 30억 위안, 6160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3만 명 선을 가까스로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식 ‘국뽕’이라는 평가, 혹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고 편견이나 오해에 기반한 혐중 정서의 영향을 받는 탓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 역시 꽤 괜찮은 수작으로 평가된다. 1937년 난징 대학살의 비극을 올바르고, 무엇보다 품위 있게 전달하고 있다.
제목을 굳이 바꾼 것은 분명 '미드나잇 인 파리'(2011)가 개봉 당시 전국에서 36만 명의 관객을 모은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원제인 ‘쿠 드 상스(Coup de chance)’를 '럭키 데이 인 파리'로 둔갑시킨 것은 영화의 이미지, 느낌을 상당히 뒤바꿔 버린 효과를 가져왔다. ‘쿠 드 상스’는 ‘행운의 한방’ ‘뜻밖의 행운’이란 뜻이다. 물론 ‘럭키’라는 단어를 넣는 묘미를 부리긴 했으나 영화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오히려 다소 섬뜩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우디 앨런은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얼터 에고(분신)같은 캐릭터를 출현시키며, 그래서 그 이름도 알랭(앨런)인데 전작들과는 달리 천연덕스럽고 거침없이 영화 속 자신을 죽여 버린다. '럭키 데이 인 파리'는 파리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치정 살인극이다. 여전히 우디 앨런식 수다가 심해서 그렇지, 진행되는 이야기는 다분히 1940년대 필름 누아르 분위기를 가져온다. 어떤 때는 '가스등'(1944)을 보는 것 같지만, 뒷골목의 잔챙이 청부살인업자들을 등장시킬 때는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 영화를 우습게 패러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 늙은 우디 앨런(1935년생)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자 잘 나가는 로봇 자동화 관련 테크 회사의 CEO인 로미(니콜 키드먼)가 하찮은데다, 한참이나 어린 인턴사원 사무엘(해리스 디킨슨)에게 SM 욕구를 느끼게 된 계기는 개 때문이라고들 생각한다. 어느 날 출근길에서 로미는 사나운 개가 회사 정문에서 사람들을 공격할 때 사무엘이 ‘남자답게’ 행동하는 걸 본다. 사무엘은 단번에 개를 제압하고 자기 손을 핥게 했다. 로미도 나중에 그 개처럼 사무엘의 손을 할짝대게 된다. 그녀는 지배 욕구보다는 피지배 욕망에 시달린다. 하지만 사무엘이 로미의 그 같은 욕정을 치고 들어온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일상의 순간에서였다. 회사 휴게실 카페를 지나던 로미는 통화를 하면서(그녀의 하루는 전화와 문자, 이메일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사무엘에게 커피 한잔을 부탁한다. 젊은이는 여자에게 커피를 건네며 하루에 커피를 몇 잔 하냐고, 오후에는 마시지 말라고,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말한다. 로미는 그에게 네 알 바가 아니지 않느냐고 돌아서면서도 이렇게 답한다. “글쎄, 한 7잔쯤?” 지배=피지배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보기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된다. 여성 감독 핼리너 레인의 섹슈얼한 영화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