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큰 인기를 누렸던 남자배우가 나이를 먹으면서 잃는 것은 잘생긴 외모이고 얻는 것은 주름이 주는 너그러운 인상이다.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의 주인공 브랜든 프레이저에게서 이제 '미이라'(1999) 때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급격하게 늘어난 체중으로 배우로서의 삶이 추락할 때 그는 '더 웨일'(2022)을 통해 차라리 272㎏이라는 극단적 몸집의 캐릭터(특수분장)를 연기해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신작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에서는 인생의 굴곡과 파고를 겪은 사람 특유의 밑바닥 인고(忍苦)의 표정을 현실감 있게 연기해 낸다. 영화를 만든 감독 히카리(본명 미야자키 미쓰요)가 브랜든 프레이저를 캐스팅한 건 역설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일본 사회의 특수한 문화를 반영하는 역할 대행 서비스란 직종에서 백인 남자가 일한다는 건 아무래도 이야기를 짜맞추기가 쉽지 않거나 아예 억지스러운 일이 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 역할을 일본인 혹은 아시아인이 했다면 영화는 오히려 정말 그렇고 그런 신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제목인 ‘렌탈 패밀리( レンタル・ファミリー, 렌타루 파미리)’는 영화 속에 나오는 역할 대행 서비스 회사의 이름이다. 이 회사는 타다 신지(히라 다케히로)라는 남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아이코(야마모토 마리)라는 여성과 코타(기무라 분)라는 직원이 있다. 아이코는 주로 대리 사과 서비스를 한다. 의뢰인 남자의 요구에 맞춰, 남자와 실제로 바람을 피운 여자 대신, 남자의 아내에게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며 사과하는 역할이다. 그 일을 할 때 대체로 아이코는 남자 와이프에게 뺨을 맞는다. 뺨을 맞으면 2만 엔이 추가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필립 밴더플로그(브랜든 프레이저)는 미네소타 출신으로, 치약 광고 출연차 일본에 왔다가 7년째 눌러앉아 사는 중이다. 그의 에이전트는 일본에서 영화 출연 일을 찾아 주려 몇 년째 애쓰고 있지만 그는 오디션에서 번번이 탈락하면서 생계에 곤란을 겪는다. 2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공항으로 가는 기차역에 앉아 차마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컸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며 그리워한다. 필립은 현재 일본 도쿄에서 (특유의) 작은 원룸에 살며 거리에 나가 홍보용 인형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만큼 인생이 내려간 상태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연기 의뢰가 들어 온다. 장례식에 찾아가 슬퍼하는 백인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필립이 처음, 역할 대행 서비스 일을 알게 되는 계기이다.
거기까지는 이 영화가 필립의 역할 대행 일과 그 사연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뻔한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필립이 ‘렌탈 패밀리’란 직장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첫 일의 에피소드는 그런 당연할 것 같은 짐작을 뛰어넘는다. 필립은 자기 신랑 역할을 해 달라고 의뢰한 이케다(모리타 미사토. 맞다.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에서 1980년대 일본 AV업계를 강타한 포르노 여배우 역할을 한 그 모리타 미사토이다)란 여성에게 묻는다. 당신에 비해 내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요? 부모님이 허락하신 겁니까? 왜 내가 캐나다인이어야 하는 거지요? 필립은 이 모든 게 거짓말이고 거짓 인생을 파는 행위라며 결혼식 직전에 '출연'을 거부하고 도망을 치려고 한다. 화장실에 숨어 있는 필립에게 동료 직원 아이코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당신에게는 이게 고작 연기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순간이 평생을 버티게 할 유일한 희망이야. 그걸 우습게 보지 마!" 필립은 결국 이케다와 성대한 결혼식을 잘 치러낸다. 그리고 신혼 첫날 호텔 룸에 둘이 어색하게 앉아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이케다를 찾아온 누군가를 보면 이 영화에 대해 무릎을 치게 된다. 그 누군가를 보고 있으면 아이코가 화장실 문 사이로 얘기한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희망’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역할 대행 서비스든 실제 연기자 생활이든 반드시 경계해야 할 금기사항이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같은 것이다. 그건 바로 '과몰입'이다. 연기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몰입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짜 연기자는 연기를 할 때만 몰입한다. 연기와 실제를 구분할 줄 안다. 과몰입하면, 곧 지나치게 캐릭터에 동화되면 자칫 모든 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의 주인공 필립 역시 과몰입의 위기를 겪는다. 그 첫 번째 일은 미국 아빠 역할을 대행하게 되면서이다. 그는 미아(섀넌 마히나 고먼)라는 아이에게 진짜 부성을 느낀다.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근데 그 과정에서 필립 자신도 변하게 된다. 미아는 일본인 싱글맘 히토미(시노 시노자키)가 키우지만 혼혈이다. 히토미는 미아를 유명 공립학교에 입학시키려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아빠를 면접에 데리고 가야 한다. 미아는 나중에 필립이 가짜 아빠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립의 또 다른 일 중에는, 한물간 원로 배우 하세가와 기쿠오(에모토 아키라)를 찾아 인터뷰하는 기자인 척 그를 위로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역할도 있다. 기쿠오는 그간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지금은 치매가 서서히 진행 중이다. 기쿠오는 필립에게 자신을 '탈옥'시켜 달라며 자기 고향인 아마쿠사로 가자고 한다. 규슈 지역 구마모토현에 있는, 일본 남부의 해안 마을이다. 기쿠오와 필립의 이 여정을 감독 히카리는 가장 공들여 찍었다. 기쿠오는 일본 신사를 볼 때마다 절을 하고 소원을 빈다. 필립은 일본에는 편의점보다 신이 많다고 말한다. 노인 기쿠오는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본 신은 800만이나 되지.” 실제로 일본에는 '야오요로즈 노 카미', 곧 '800만의 신'이란 개념이 있다. 만물에 다 신이 있다는 의미이다. 필립은 기쿠오를 통해 모든 사람 한명 한명이 다 신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음을, 그 같은 인생의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에는 몇 가지 반전 아닌 반전이 있는데, 그것이 만든 트릭이 사람들을 살짝 놀라게 한다. 예를 들어 회사 '렌탈 패밀리'의 사장 타다가 사는 모습 같은 것이다. 타다의 실체를 알고 놀라게 되는 감정은, 처음에 필립에게 신랑 대행 서비스 일을 맡긴 여성 이케다의 정체를 알았을 때 이윽고 놀라게 되는 마음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자체가 개개인의 삶을 극도로 외롭게 고립시키며, 수시로 난관에 봉착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무서운 현실과 차가운 진실을 피해 갈 수 있다면 차라리 가짜를 선택하고 싶어 한다.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는 바로 그 같은, 사람들의 측은한 욕망을 반영하고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코끝이 찡해진다.
주인공 필립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자를 산다. 그가 단골로 찾아가는 윤락녀(안도 타마에)는 필립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우리는 같은 일을 하네요. 당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는 사람들의 몸을 위로하고." 모두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의지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음을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걸 깨닫게 되는 과정은 다소 서글픈 것이다.
감독 히카리(미야자키 미쓰요)는 영화보다 OTT 드라마로 국내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일본 야쿠자를 소재로 만든 갱스터 느와르 '도쿄 바이스'(2022)는 미국 HBO 맥스에서 나왔다.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였던 '성난 사람들(BEEF)'(2023)에서는 총 3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보다는 이야기를 잘 짜는 감독이다. 그 섬세함이 좋다. 거기에다 밀어붙이는 연출의 힘이 남다르다. '도쿄 바이스'는 이런 계열 영화에 있어 전설 격인 마이클 만이 제작을 맡았던 작품이다. 히카리의 연출력을 인정했다는 얘기이다.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 드립니다'는 지난 2월 25일 개봉했다. 흥행성적은 과히 좋지 않은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