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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오랜만에 만나는 프랑스식 정통 좌파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감독 미카엘 허스

 

프랑스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한국 극장가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런 영화일수록,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지만, 수작이다. 단아하다. 그 안에 많은 말을 담고 있다.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안 되는 이유는 프랑스 영화이기 때문에? (시장의 할리우드 의존도가 병적인 수준이다)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의 영화 주 소비층이 잘 모르는 배우이다) 그것도 아니면 내용이 지난 시대 얘기여서? (1980년대가 배경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어쩌니저쩌니 이 영화를 외면하는 것이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엘리자베트(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막 이혼한 상태다. 정확하게는 ‘당’했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엘리자베트는 각각 고등학교 고학년과 저학년인 딸 쥬디트(메간 노섬)와 아들 마티아스(키토 라용-리슈테르)를 키우는 중이다. 애들이 커 갈수록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디디에 산드로)는 그런 딸이 내심 불안하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도와주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라는 걸 서로가 잘 안다. 엘리자베트는 남편 의존도가 높았던 전형적인 생활 주부였다. 새로 일을 시작하기도 늦은 나이다. 불안하고 무섭다. 그녀는 그래서 안절부절못한다. 엄마보다 더 철이 든 것 같은 딸 쥬디트는 ‘징징대는’ 엄마를 달래기 일쑤다. 엘리자베트는 출근 첫날 직장에서 잘린다. “왜 엄마?”라고 묻는 쥬디트에게 엘리자베트는 창피한 일이라는 듯, “‘저장하기’ 누르는 걸 까먹었어. 그래서 입력한 걸 다 날려 먹었어.”라고 말한다.

 

 

영화의 배경은 1981년에서 1988년이다. 1984년과 1988년, 두 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힘들긴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전화 교환원 일을 얻는다. DJ 방다(엠마누엘 베아르)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은 청취자의 사연을 읽어 주는 걸로 인기를 얻고 있고 종종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과 실시간 대담을 이어 나간다. 엘리자베트는 이들과 먼저 얘기를 나누고 어떤 대화를 원하는지 감별해서 방다에게 연결하는 역할이다. 민감한 일이다. 있을 수 있는 변태의 전화, 장난 전화를 걸러내서 미리 차단해야 한다. 엘리자베트는 실수도 하지만 점점 자신의 역할에 적응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탈룰라(노에이 아비타)라는 이름의, 갈 곳 없는 소녀를 알게 되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되기도 한다. 아이 둘은 알아서 성장하는데 딸은 정치 고관여층 젊은이로 커 가고 아들은 작가 지망생이지만 아직 출판사로부터는 좋은 소식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삶의 순간순간이 비록 힘은 들지만 그래도 조금씩 움직여 간다. 엘리자베트는 방송국 PD와 잠시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육체관계 한 번으로 끝난다. 그녀는 실망하고 외로워한다. 방송국 일 외에도 도서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임시 사서 일도 하게 된 엘리자베트는 책을 빌리러 온 연하남 위고(티볼트 빈콘)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같이 살지는 않지만 서로를 오가며 자유로운 연애를 즐긴다. 엘리자베트는 비로소 진짜 사랑, 의존하지 않고 상대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파리, 밤의 여행자들'을 두고 어떤 이혼녀들, 홀로서기를 감행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들은 엘리자베트에게 강한 동일화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매우 낭만적이라고 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영화가 착하고 예쁘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파리의 야경이 매력적으로 펼쳐지는 영화이긴 하다. 아들 마티아스, 입양한 듯같이 살아가는 딸 탈룰라(가끔 약을 해 엘리자베트를 미치게 만든다)는 종종 사는 집의 발코니 위, 지붕에 올라가 담배를 피운다. 파리의 밤이 아름답다. 마티아스와 탈룰라, 쥬디트는 종종 극장을 간다. 그때의 청소년들에겐 여가를 보내기에 극장이 최고였다. '그렘린'이 상영되고 막 '인디아나 존스'의 인기가 시작되던 때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낭만적이라느니 예쁘다느니 하는 것은 으레 하는 소리일 수 있다.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고,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진보 사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 같은 것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 그건 이 영화가 굳이 이 2020년대를 돌진하고 있는 시대에 (2022년 작품이다), 그것도 OTT의 온갖 콘텐츠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굳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 것만으로도 단박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1981년 5월 10일이라는 날짜가 명시된 이유가 있다. 좌파 정당을 대표하던 사회당이 만년 2등에서 벗어나 전후 최초로 결선투표에서 이겼다. 새 시대를 위한 변화를 희망하는 대중의 환호 속에 엘리자베트의 가족들이 자연스레 어울린다. 그 와중에 탈룰라도 파리에 막 도착했다.

 

 

1980년대는 프랑스에선 희망의 시대였다. 정통 사회주의자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의 1기 집권 시대로 드디어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의 적통을 이어받는 인민을 위한, 민중을 위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들떴던 시대이다. 부대끼며 살아가기가 너무도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따뜻한 심성의 아버지가 늘 뒤에서 위로해 주고(미테랑처럼) 아이들과 엄마는 그래도 극단의 갈등은 피해 가며 서로를 인정하는 선에서 물러날 줄 알았던 시대이다(코아비타시옹, 좌우 동거 정부). 밖에서 ‘업어 데려온’ 여자아이가 불편하지만 그래도 같이 살아가려 애쓴다. 지금의 프랑스 사회가 이민자라면 질색하며 극우화되고 비정상사회가 된 것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의 사회였음을 보여 준다.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더불어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로 멀리서 떨어져, 혹은 바로 옆에 있더라도 문자와 이모티콘, 갖가지 생경한 약어로 디지털 ‘소통’하는 지금 세대와는 달리 영화 속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글로 써서 보내고 전화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1980년대에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은 2020년대의 우리가 보기엔 완벽한 SF이다. 심지어 엘리자베트의 딸 쥬디트처럼 아이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아들 마티아스처럼 뭔가를 쓰고 생각하며 사유하고 성찰하려 했다. 그런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디에 있는가.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이 묻고 있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에 맞닥뜨리게 될 즈음엔 이 영화가 이혼녀의 얘기라느니, 예쁘고 착한 영화라느니 하는 생각은 사라지게 된다.

 

 

감독인 미카엘 허스가 바라는 것은 작게는 프랑스 사회의 1980년식 복원에서 크게는 (지금으로서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들 하겠지만) 세상이 과거에 지향했던 인간적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되찾는 것일 수 있다. 특히 후자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하며 그 가족이 혈연으로 구성된 것이든 의지로 만들어진 새 가족이든 상관없이 함께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프랑스의 정통 좌파 영화이다. 그걸 드라마 장르로 풀었다. 그 속내가 보이면 영화가 매우 흥미롭다. 어쩌면 요즘 관객들은 그걸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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