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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수용소에서 가족 재회

 

오늘 아침 사람들이 꽉 들어찬 화물열차가 수용소에 들어왔어.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판자들이 부서져 작은 구멍이 나 있더군. 그런데 갑자기 한 구멍을 통해 어머니의 모자와 아버지의 안경과 미사의 창백한 얼굴이 보이는 거야. 나는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나를 보았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대재앙이야. 지난 24시간 동안 유대인들이 연이은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수용소가 넘쳐나고 있어. 네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오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미샤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 아버지는 완전히 무기력하고, 만 하루 만에 웃옷의 칼라가 훌쩍 커진 것처럼 보이고, 까칠한 흰 수염이 애처로워. 하지만 우리가 오늘 아침 빗속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여호수아기에서 놀라운 인용구를 찾아냈을 때 아버지는 작은 성경을 흔들어댔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큰 막사에 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 찬 인간 창고 같아. 좁은 철제 침상 하나에 세 사람씩 자고, 매트리스도 없고 물건을 둘 곳도 없고, 아이들은 겁먹고 소리를 질러대서 정말 비참한 상태야. 나는 최선을 다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려 노력할 거고, 더 기운을 내고 용감해질 거야. 이따금 암흑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야.

 

나는 항상 새로운 힘을 얻는 성경 구절이 있어. 그 구절은 내 기억에 이런 거야. ‘나(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버려라.’ 어젯밤에 다시 내 부모에 대한 연민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쳤어. 만일 내가 굴복하면 연민이 나를 마비시킬 거야. 내 기족에 대한 슬픔과 염려에 온 마음을 빼앗기면 이웃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겠지.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아.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혈육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점점 더 기울게 된다./ 출처 : 《에티 힐레숨》 패트릭 우드하우스. 이창엽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에티 힐레숨 1914-1943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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