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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웃는 일이 죄가 되는 경우

 

소중한 친구 마리아에게, 오늘 아침 수용소 위에 무지개가 떴고 진흙 웅덩이에서 태양이 빛났어. 병원 막사에 들어갔을 때 어떤 여자들이 나를 불렀어.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유쾌해 보이네요.” 빅토르 엠마누엘*에 대해, 인기 있는 정부에 대해, 그리고 다가오는 평화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까 궁리했어. 무지개 때문이라고 그들을 속일 수는 없었어. 그렇지 않니? 설령 내가 유쾌한 유일한 이유가 무지개였더라도 말이야.

 

* 이탈리아 왕 빅토르 엠마누엘 3세(1869-1947)는 1943년 7월 9일 연합군이 시실리에 상륙한 후, 7월 25일 무솔리니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오늘 아침에도 2500명을 이송하는 열차 한 대가 떠났어. 간신히 부모님을 거기서 제외시켰지만, 상황이 몹시 절망적이야. 소위 영향력을 가진 좋은 친구들이 오늘 아침에 나의 부모님은 다음 주에 이송될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말했거든.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다 빨아내는 거야. 사정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

 

오늘 밤 나는 아기들에게 옷을 입히고 어머니들을 진정시키는 걸 도울 거야. 그게 내가 바랄 수 있는 전부야. 그것 때문에 거의 나 자신을 저주할 뻔했어. 우리는 아프고 무방비 상태인 형제자매들을 허기, 더위, 추위, 노출, 파멸에 넘겨주고는, 그들에게 옷을 입혀도 가림막도 없는 가축운반차로 호송하고,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은 들것으로 실어 기차에 태운다는 걸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건 무슨 불가사의일까? 우리는 대관절 어떤 치명적인 기제(mechanism)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오늘 밤이 지나면 다시 웃는 것이 죄가 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어. 녹색 군복을 입고 무장한 경비대의 얼굴을 생각하면, 맙소사, 그들의 얼굴이라니! 나는 안전한 유리창 뒤에서 그들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는데, 이제껏 그토록 놀란 적이 없었어. 나는 인간의 목숨을 주관하는 말을 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신이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나는 그 구절과 함께 힘든 아침을 보냈어.

 

* ‘인간의 목숨을 주관하는 말’이란 ‘야웨’ 혹은 ‘아도나이’였지 않았을까?(필자) /출처 : '에티 힐레숨' 패트릭 우드하우스. 이창엽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에티 힐레숨 1914-1943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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