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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의 '오늘의 성찰'] 베스터보르크 강제수용소

 

수용소 건물들은 모두 단층이지만, 마치 우리들 가운데 바벨탑이 세워진 것처럼 바이에른과 그로닝겐, 작센과 림뷔르흐, 헤이그와 동 프리슬란트의 다양한 엑센트를 들을 수 있어. 또 폴란드 악센트의 네덜란드어, 네덜란드 악센트의 독일어도 들려, 워터루플라인과 베를린 방언도 들리고. 단지 0.5㎢ 밖에 안 되는 곳에서 이 모든 소리가 들린다.

 

이 강제수용소에 부족한 것 중 최악은 확실히 공간이 부족한 거야. 급히 만든 거대한 막사들 안을 보면 분명해, 외풍이 심한 널로 만든 격납고 같은 건물 안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수백 명이 널어놓은 빨래로 이루어진 낮아진 하늘 아래 철제 침대가 3단으로 쌓여 있어.


사람들은 철제 침대 위에서 살고, 죽고, 먹고, 병들고, 밤새 잠들지 못한 채 누워 있기도 해. 우는 애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혹은 어째서 이미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보내진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서 전혀 소식을 들을 수 없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야.

 

대도시의 문화계, 정치계의 유력 인사들도 이 넓은 불모의 황야 위에 좌초했다... 한 번 강력한 격변이 일자 그들이 살던 무대 배경은 모두 허물어졌고, 이제 그들은 베스터보르크라는 바람 쌩쌩 불고 가리는 데 없는 무대 위에 다소 주저하며 어색하게 우두커니 서 있어. 익숙한 상황에서 쫓겨난 그 인물들은 아직도 이곳의 사회보다 더 복잡한 사회의 불안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그들은 가시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걸어. 실물 크기이고 노출된 그들의 그림자가 광활하게 뻗은 하늘을 배경으로 움직인다. 너희들은 그걸 상상할 수 없을 거야.


그들을 지켜 주는 사회적 지위, 존경, 재산은 허물어졌고, 이제 그들은 마지막 한 조각의 인간성에 의지하고 있어. 그들은 땅과 하늘로 둘러싸인 빈 공간에 존재하고, 무엇이든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그 공간을 채워야 해. 그밖에 다른 건 없어.

그래, 궁극적인 인간의 가치가 시험받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야./ 출처 : '에티 힐레숨' 패트릭 우드하우스. 이창엽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에티 힐레숨 1914-1943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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